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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그냥 원래 아는거거든요 얼마전 한국어학당에 다니는 외국인 친구가 '~했어요'와 '~했거든요'의 차이를 물어왔다. 번역을 하면서 한국어로 뉘앙스를 더 잘 전달하려고 이런 표현들 중 뭐가 나을까 고민할 때는 있어도 표현의 의미 자체를 고민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생각없이 쓰던 모국어가 참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전적 정의처럼 명쾌한 답을 줄 수는 없어서, 친구가 찰떡같이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예를 들어가며 어설프게 설명해줬다. 그런데 오늘 여섯 살 조카가 놀러와서 밥을 먹는데, 친구가 했던 질문때문인지 요즘이 한창 말대꾸할 나이인지 얘가 말 끝마다 붙이는 '~거든'이 유독 귀에 들어왔다. 언니: 밥 또 먹어야지.조카: 아직 입에 있거든? 언니: 물도 마시고. 조카: 목 안 마.. 더보기
운전면허증 발급의 추억 운전면허증을 새로 발급 받았다. 면허를 딴지는 14년이 됐지만 시험 볼 때 트럭을 몰고 일반적인 자동차라면 운전석에 앉아본 적도 없었는데, 이제 진짜 운전을 하기 위해 목욕재계하는 마음으로 증명사진부터 다시 찍었다. 벌써 세 번째다. 1) 첫 운전면허증 발급 - 삥뜯기스무 살 여름방학 때 언니를 따라 운전학원에 등록하고 면허를 땄다. 아직 고등학생 티를 못 벗은 나는 외출할 때 제대로 된 지갑을 챙기기보다 교통카드가 달린 휴대폰 아니면 몇 천원 정도만 주머니에 찔러넣고 다닐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제 나이도 있으니 항상 돈을 챙겨 다니라는 엄마의 꾸중을 한창 듣던 시기였다. 면허증을 발급 받는 날도 집에서 멀지 않은 시험장까지, 가벼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맙소사, 면허.. 더보기
  드디어 감기가 나아간다. 이제야 좀 새해를 맞이할 기분이 든다. 얇은 코트정도 두께에 기장이 종아리까지 오는 로브를 며칠 동안 내 몸의 일부인듯 걸치고 있었다. 오한이 있어서 로브를 안 입으면 이불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몸을 거의 다 덮어주니까 포근하고, 따뜻하고, 계속 이불 속에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런데 오늘 병원에서 수액까지 맞고 한결 거뜬해진 몸으로 다시 로브를 걸치려니까 와 덥고 무겁고 어쩜 이렇게 거추장스럽지.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더보기
혼자 올해는 유독 혼자인 해였다. 2월에 있었던 생일부터 태국에서 혼자 보냈고, 크리스마스에는 집에서 인터넷도 끊긴 채로 연지 돌보며 보냈고, 마지막 날인 오늘은 몸이 아파서 부모님과 함께 집에서 보내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그냥 그렇지만 12월 31일은 특별한 기분이라 늘 약속이 없으면 혼자서라도(사실 혼자가 더 좋다) 밖에 나가서 혼자 한 해를 곱씹었다. 그래서 한 해의 마지막 날 집에 있는 게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날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혼자인 때가 많았다. 우선 몇 년만에 솔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는 돈을 벌기 시작한 이래 최고로 일을 많이 해서 새로운 사람은 커녕 친구들 만날 시간도 별로 없었다. 그만큼 내 커리어가 발전한 걸까? 회사라서 승진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좋은 책을 두 권 맡.. 더보기
오늘의 깨달음 - 장발장에 대하여 오늘은 가족의 날. 언니네가 집에 와서 김장 김치와 수육을 먹는데 아빠가 장만한 웬 은주전자를 보면서 대화 시작. 언니: 장발장이 훔쳤을 법한 은주전자네 나: 장발장이 훔쳤던 건 빵 아니야? (나 레미제라블 영화 극장에서 두 번 봤는데..) 언니: 처음엔 빵 훔쳤고 나중에 은촛대를 훔쳤는데 신부님이 감싸줬잖아 나: 그 신부님도 자기 돈 주고 산거 아니라서 봐줬을 거야. 헌금으로 샀겠지. 모두: 그렇네!!! 더보기
가을 산책 주말이 지나면 단풍은 떨어지고 미세먼지가 가득할 줄 알았는데 쾌청하고 나무는 아직 울긋불긋해서 설렜던 가을날. 일이 많아서 멀리 나가지는 못하지만 어떻게든 가을을 즐기기로 했다. 나 혼자 우리 동네의 꽤 괜찮은 개천에 가서 조깅을 하면서 단풍을 마음껏 보고 올까. 아니면 하루종일 누워 계시지만 산소를 많이 마시는게 좋다는 우리 강아지님을 모시고 아파트 뒤뜰 겸 분리수거장에 나가서, 몇 그루 있는 나무와 쓰레기 더미를 감상하며 빙글빙글 맴을 도는 강아지님 옆에 심심하게 서있어 볼까. 오늘은 뒤뜰 당첨이다. 그래 개천이 아무리 좋아봤자 니가 있는 풍경만큼 좋을 리가 있나. 너 있는게 최고지. 더보기
여행, 태도의 발견 독일은 지금껏 다녀본 나라 중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였다. 사실 '이 나라는 어떻고 저 나라는 어떻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여러 나라를 경험해본 것도, 인종차별이라는 심각한 주제에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 만큼 설움을 겪어본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껏 동서양의 이곳저곳을 소소하게 다녀 본 중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기분을 선사한 유일한 나라가 독일이었다. 베를린에 시작해 프랑크푸르트로 내려가고, 기차를 타고 남부의 몇몇 마을을 거친 뒤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와 며칠을 더 머물다 가는 2주 일정이었다. 다른 도시들을 거쳐 근 열흘 만에 돌아온 베를린은 괜히 익숙하게 느껴졌더랬다. 독일어 앱에 나오는 "영수증 좀 주세요" 같은 문장을 따라 하는 발음도 (내 생각에는) 점점 자연스러.. 더보기
난 이제 어른이니까 보고싶고 듣고싶어 다니고 싶고 만나고 싶어알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 영심이 영심이보고싶고 듣고싶어 다니고 싶고 만나고 싶어 해봐 해봐 실수해도 좋아 넌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해봐 해봐 어서해봐 해봐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 영심이의 주제가를 오랜만에 들었다.십 몇 년만에 듣는 것 같은 이 노래를 너무 익숙하게 흥얼거리는데문득 후렴구의 가사가 너무나도 낯설게 들린다 해봐 해봐 실수해도 좋아 넌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해봐 해봐 어서 해봐 해봐 무심한 노래는 세월이 얼마나 흐른지도 모르고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 실수해도 좋다고 응원해주는데나는 이제 너무나도 어엿한 어른이다아직 철들지 않았다는 둥의 핑계를 대고 싶지도 않고누가 뭐래도 내 삶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맞다 그래도 그냥 해보기로 하자.. 더보기
게임에서 얻는 삶의 교훈 휴대폰 게임에 본격적으로 손을 댄 건 일 때문이었다. 게임에 대한 책을 번역하게 되었는데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책에 나오는 게임을 직접 해보는 게 최선이었다. 때마침 아이패드라는 최고의 게임기까지 손에 넣으면서 일이라는 훌륭한 핑계 아래 많은 게임을 해봤고, 그중 와 을 가장 꾸준히 즐겨하고 있다(며칠 전 클래시 오브 클랜 대규모 업데이트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적당한 게임은 창의력,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등등등 장점이 많다. 내가 이래 봬도 게임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책까지 번역한 사람인데! 하지만 아무리 게임에 장점이 많다고 해도 클래시 오브 클랜에서 힘들게 모은 다크 엘릭서를 털릴까 봐 일하는 도중에도 게임 화면을 끄지 못하는 내 모습은 도무지 멋지지 않다. 이런 죄책감 때문인지 게임을 .. 더보기
프리랜서의 여행 지금 나는 마닐라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이 글을 쓴다. 출장도 아니고 순수하게 놀러 왔건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또 한 번 노트북을 짊어지고 휴가길에 오른 것이다. 요즘은 자꾸 거절을 하다 보니 잦아들었지만, 나는 이 친구 저 친구에게서 같이 여행 가자는 제안을 일 년에 몇 번씩 받는 인기인이었다. 내가 연륜이 많아서 나랑 다니면 낯선 도시에서도 마음이 든든하다거나 타고난 모험심으로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소위 말하는 '돈 있는 백수'다. 물론 사실은 내가 피땀 흘려 버는 돈이니까 '백수'는 아니지만 일 년에 며칠이라고 못 박혀 있는 휴가를 윗사람 눈치 봐가면서 써야 하는 직장인이 아니라 내가 쉬고 싶으면 언제든 마음대로 쉴 수 있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직장에 다니는 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