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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아껴주세요 우리말 외래어를 넘어서서 외국어를 무작정 음차어로 쓰면서 '우리 말로는 그 심오한 뜻/미묘한 차이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말을 볼 때마다 정말 속상하다. 물론 실제로 그런 단어도 있고, 반대로 미묘한 뜻도 외국어로 그대로 옮겨지지 않는 우리말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 외국어를 그대로 가져다 쓴다고 본래의 뜻이 정확하게 전달되는 건 결코 아니다. 한국어로 표현 안 되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면 음차를 해봤자 그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차이를 이해하기 힘들텐데, 그러면 결국 뜻을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아듣고 말자'는게 돼버리니까. 하지만 두 언어 간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 그 과정에서 우리 말이 깊고 풍성해진다. 지금 영어가 세계적인 언어가 된 것도 그 덕.. 더보기
달리기 - 새 계절 맞이 오늘은 처음으로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달리기를 나갔다. 벌써부터 반바지를 입은 건 계절이 자연스럽게 바뀌어서라기보다 이상기온 때문이지만, 어쨌든 복장이 바뀔 때마다 한 단계를 넘어선 것 같은 뿌듯함이 있다. 오늘은 사실 기록이 좋지 않았다. 어제는 괜찮았는데 근육의 피로가 덜 풀렸던 걸까? 그래도 앱 실행하고 그 시간은 달리기에 온전히 투자한다는데 의의를 둔다. 마치 맨날 학교 가서 졸기만 하면서도 개근하는 학생처럼. 이렇게 기록이 좋지 않았던 날은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어차피 매일 발전만 할 수는 없다. 그날그날 컨디션이 다른 건 달리기를 시작할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내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이 와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런데 저조한 컨디션의 기준이 점점 올.. 더보기
외출용 장난감 조카는 우리 집에 놀러 올 때 항상 나비 날개 모양 반짝이 배낭에 각종 장난감을 열심히 챙겨 온다. 자기가 만든 비즈 공예 캐릭터들, 스티커북, 보드게임, 아끼는 인형 등 구성품은 매번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막상 와서는 가방에서 제대로 꺼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어제 나는 오래간만에 멀리 외출할 일이 있었다. 왕복으로 지하철만 2시간을 꼬박 타야 하는 거리다. 이렇게 먼 길을 갈 땐 일만 보고 오면 왠지 허무해서 주변 구경도 하고 그 동네 카페에 가서 일도 하다가 온다. 그러면 용건이 있어서 왔다갔다한 게 아니라 짧은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아서 하루가 더 보람차다. 그런 미니 여행이 있으면 평소보다 약간 비장하게 가방을 챙긴다. 먼저 노트북을 담는다. 사실 노트북을 안 챙겨야 더 여행스럽겠지만 .. 더보기
추위 떨치기 달리기 하기 환상적인 나날이다. 코와 입을 드러내고 다닌다는 너무 당연한 일이 전혀 당연하지 않아 져서 그런가, 해 질 무렵 한적한 양재천에서 마음껏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며 달리면 이런 사치가 또 있나 싶다. 날씨가 꽤 따뜻해져서 어제는 처음으로 겨울 내내 입던 재킷을 생략하고 나갔다. 괜히 잘 달리지도 못하고 감기나 걸려올까 걱정돼도 돌아오는 길엔 역시나 땀이 줄줄 흐른다. 추위를 떨치는 방법은 옷을 더 껴입고 움추리는 것뿐인 줄 알았는데 가슴 펴고 더 열심히 달려서 추위를 떨칠 수도 있는 거였다. 더보기
저 믿고 사주시잖아요 집 앞에서 아주머니 1이 5kg에 만원짜리 귤을 팔고 계셨다. 내가 몇 달 전에 귤에서 야쿠르트 맛이 난다며 줄창 먹어댄 그 귤이었다. 마침 지갑에 현금도 넉넉해서 한 상자를 사려고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 2가 다가오더니 물으셨다. "지금 현금이 없는데 카드 결제는 안돼죠?" 아주머니 1은 대답하셨다. "계좌번호 드릴테니까 일단 가져가시고 돈 보내주세요." 네? 이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계좌이체해서 화면 확인하고 주신다는 말씀 아니신지? 아주머니 2도 의아하셨나 보다. "네? 뭘 믿고 그냥 주세요?" 아주머니 1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셨다. "저 믿고 사주시잖아요." 저런 마음을 담아 파는 귤이라서 그렇게 달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저런 큰 그릇으로 나의 클라이언트들을 대할 수 있기를. 더보기
노래를 불러요, 작가여 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된 때부터 이 단가 'sing a song, writer'인 줄 알아왔다. 사실은 singer-songwriter라는 걸 나중에 알게되긴 했지만 이미 내 마음이 느끼는 단어의 뜻을 머리가 아는 지식으로 밀어낼 순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싱어송라이터라고 하면 '노래를 불러요♪'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런 착각을 한 사람이 설마 나 혼자일까 싶어 구글에 sing a song writer를 쳐봤더니 너무나도 찰떡같이 singer-songwriter 결과를 띄워주는구나. 더보기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어릴 적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의 열혈팬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여자 주인공 예나를 굉장히 좋아했었다. 예나는 얼굴이 흰색이었다. 뽀얀 정도가 아니라 푸른끼마저 도는 흰색. 반면 나는 꽤 가무잡잡했는데, 엄마랑 언니는 나와 달리 하얀 편이라 어린 마음에 나도 비슷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예나를 동경하며 예나처럼 하얀 얼굴이 되겠다는 의지로 하루에도 몇 번씩 열심히 세수를 했었다. 사실 나는 어릴 때 얼굴에 비누칠을 하는 게 무서워서 혼자 세수할 때면 물만 묻히고 나왔었는데, 두려움을 떨쳐내고 스스로 비누 세수를 할 수 있게 해 준 감사한 사람이 바로 예나였다. 그렇게 열심히 세수를 했지만 당연하게도 흰색은 커녕 파운데이션 21호가 맞는 피부도 되지 못했다. 대신 대학교 때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예나.. 더보기
나 쓰레기 부모님의 여행으로 부엌에서의 생산 활동이 중단된 지 거의 이 주째. 냉장고를 뒤져서 곰팡이 핀 야채들을 정리하고 나니 영 마음이 안 좋다. 마늘이랑 콩나물은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그렇지만 며칠 전까지 멀쩡했던 오이 두 개, 고기랑 같이 구워 먹으려고 해 놓고 깜빡했던 버섯에 곰팡이를 피워버린 내가 밉다. 왜 야채가 있는 걸 뻔히 알고도 냉동식품이나 먹은 건지. 며칠 지나도 똑같이 꽝꽝 얼어있을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음식이나 음식 재료 관리 못해서 버릴 때면 진짜 쓰레기는 이 음식이 아니라 나인 것만 같다. 상하지 않고 살아남아준 양배추가 고마워서 밤이 깊었지만 샐러드를 해먹었다. 내일은 더 노력할게. 더보기
전전긍긍 일 잘하고 싶다. 정말 정말 잘 하고 싶다. 내가 번역한 결과물은 읽는 사람의 시간을 차지하고, 온라인에서 서버 용량을 차지하고, 인쇄물은 소중한 나무의 희생으로 생산돼 어딘가에서 공간을 차지하는데 그 온갖 자리 차지들을 헛되게 할 수는 없다. 세상에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보탬이 되어야 하는데 이미 공급 과잉인 이 세상을 불완전한 결과물로 더 비좁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더 열심히 하자. 더 잘 하자. 더보기
링링의 센스 베란다 유리가 와장창 깨졌다. 이 집에 20년을 살면서 갖은 날씨를 겪어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인 걸 보면 링링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긴 한가보다. 우리 동이 단지 맨 바깥쪽에 있어서 바람을 정면으로 받은걸까? 그렇다고 해도 200세대 가까이 되는 우리 동에서 이런 사고가 난 집은 몇 집 안되는데 그 중 하나가 하필이면 우리 집이라니. 커다란 베란다 창틀이 떨어져나갔고, 깨진 유리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발라놓았지만 바닥에도 떨어진 유리조각이 잔뜩 있었다. 주말이라서 바로 수습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베란다가 시원하게 뚫려있다. 잘못한 것도 없는에 왜 이런 봉변을 당해야 하나 억울하긴 한데, 그럼 어린 애들 사는 1호 집을 건드리리, 할머니 할아버지 둘이 사시는 3호 집을 건드리리. 그러고보니 건강한 어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