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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커피맥주 요즘 스터디 카페에서 일하면서 무료로 제공되는 음료를 아주 열심히 마시고 있다. 누가 보면 저 사람은 일하러 왔니, 음료수 축내러 왔나 싶을 만큼 많이 마시는 게 목표인데, 인간의 물배에는 한계가 있어서 쉽지 않다. 여기와 오랜 악연이 있는 만큼 이렇게라도 뽕을 뽑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그보다도 여기가 스터디 '카페'라는 이름에 걸맞게 음료 구비가 참 잘 돼있다. 몇 년 전 초반에 생긴 스터디 카페는 같은 가격에 카페테리아가 아주 부실했는데 이제 이 업계도 경쟁이 치열해져서 그런 것 같다. 여기 카페테리아에는 에스프레소, 핸드드립 커피 3종과 직접 커피 내리는 도구, 에이드 베이스, 홍차 티백, 립톤, 시럽이 항상 구비돼있다. 그래서 우유를 사다 놓고 사랑하는 라테를 기본으로 한 잔씩 마신 다음에 다양한.. 더보기
금단의 공간 우리 아파트 상가 독서실은 이 동네에서 근 20년째 내게 금지된 공간이었다. 나는 고3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능 공부를 하겠다고 집 앞 독서실에 등록한 지 이틀 만에 주인아주머니와 모종의 갈등이 생겼고, 아주머니는 다음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의 만행을 알렸다. 그리고는 자신은 괜찮지만 총무를 보는 대학생이 이렇게 싸가지없는 아이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며, 자신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나를 독서실에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단다. 나는 엄마가 통화하는 소리를 방에서 있는 힘껏 훔쳐 들으며 떨고 있었다. 다행히도 엄마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다니고 싶으면 사과를 하든지 아니면 엄마가 대신 짐을 챙겨 오겠다고 했다. 사실 나도 화가 날 만한 이유가 있었고, 독서실에 간다고 딱히 공부가 .. 더보기
포스트 아파트 나에게 아파트는 집의 다른 말이다. 굳이 따져보면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4~5년 정도 빌라에 살아보기도 했지만 내 기억 속에서 비중이 크지 않다. 그래서 책자 속 배우들 인터뷰에 나와있는, '아파트'에 대한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에 대한 질문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흡사 삶에 대한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뭐냐는 질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파트는 '아빠'를 뜻하기도 한다. 이건 제작진의 의도는 전혀 아니었지만 오늘 공연 중 나오는 영상을 보고 깨달은 거다. 왜냐하면 우리 아빠가 아파트 만드는 일을 오래 했기 때문이다. 이런 개인적인 이유로 아파트는 아빠를, 이마를 부딪히면 말도 못 하게 아픈 제도판 모서리를, 어린 시절의 온갖 추억과 명절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실 나도 아파.. 더보기
토이스토리 4 - 쓰레기는 쓰레기 통으로 포키는 쓰레기가 되고 싶었고, 이미 쓰레기였다. 꿈이라고 부르기는 뭣해도 포키가 '해방'을 외치면서 몸을 던져 돌아가려 했던 곳은 쓰레기통이었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아이의 장난감이 되어야 한다는 강요 아래 그 탈출 시도는 번번이 물거품이 된다. 포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우디의 못다이룬 꿈에 대한 미련이었다. 아이의 친구가 되는 것은 장난감으로 태어난 우디의 꿈이고 기쁨이었다. 그런 그가 앤디 옆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장난감으로서의 매력을 잃은 뒤 다른 존재에게 그 꿈을 대리 실현해줄 것을 강요하는 모습까지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포키는 태생부터가 일회용 식기였다. 인간 아이들을 기쁘게 해줘야 할 어떤 책임도 의무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하물며 장난감으로 태어난 보핍도 새로운 삶.. 더보기
안녕 드림위즈 드림위즈 메일이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버티다 이제야 종료하는 게 더 신기하다. 드림위즈는 나의 첫 메일이었다. 1999년에 서비스를 개시했다고 하는데, 나는 2000년부터 확실히 드림위즈를 쓰기 시작해서 무려 2014년 말까지 업무용으로 활발하게 이용했었다. 그때 지메일로 넘어간 것도 내가 원했던 게 아니라 갑자기 접속이 안돼서 계속 버티다간 일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아쉬움을 무릅쓰고 갈아탄 거였다. 이만하면 원년 멤버에 충성 사용자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나? 오랜만에 접속해본 메일함 최근 페이지에는 각종 광고 메일이 쌓여있지만 페이지를 한참 넘기면 각종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썸남들과 주고받았던 이메일은 오글거리지만 귀엽다. 첫 해외여행 예약 확인 이메일이 있.. 더보기
6월 이야기 재미있는 일이 많았던 6월이 벌써 끝나간다. 올해 5, 6월은 몸뚱이에게는 집에 누워 앓기만 하는 힘들고 지겨운 시간이었는데, 그와 반대로 머리와 손가락에게는 온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처음 접하는 분야의 일이 두 가지나 들어왔고, 새 책 번역도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겨울에 구상했던 가방 디자인 제작에 돌입했다. 이름하야 '시치미 백'! 우선은 그동안 번역하면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일러스트레이터로 스케치를 해본 다음 종이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합성피혁 원단을 주문해다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내 손바느질로 샘플을 만들어봤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 읊는 것처럼 나도 패션 회사랑 9년째 일하니까 가방을 만드나 보다. 이제는 전문가의 손을 빌려 제대로 된 샘플을 만들어보려.. 더보기
잔인한 5월 5월 초부터 나를 괴롭혀온 감기가 드디어 마침내 이제야 끝을 보이는 것 같다. 원래 좀 허약 체질이긴 해도 이 정도로 징글징글하게 기침을 하는 건 연지가 가족이 된 후로 처음이다. 사실은 나이가 들어서 천식이 재발하는 건가 두려워서 병원에 물어봤는데, 감기가 들어서는 시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면 면역력이 약해져서 평소보다 더 아플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감기 초반에 강아지가 죽었다고 했는데, 사실 TMI라고 생각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진료 차트에까지 기록해놓으셨다(이렇게 해서 연지는 내 진료 차트에 두 번이나 족적을 남겼다. 안과 차트에는 강아지한테 눈 긁혀서 각막에 상처 났다는 기록이 있더라 이 똥깨야). 그런 거라면 내가 온몸으로 연지를 장렬하게 배웅해주는 것 같아서 나쁘지 않다. 자고로 '연지.. 더보기
ID 변천사 aeki라는 ID는 중2 때였나 중3 때였나 처음 인터넷 세계에 입문하면서 내가 만든 캐릭터 이름을 가져다 붙인 거였다. 사실 집에서 불리는 애칭이기도 했는데 한글로 쓰면 좀 그렇지만 영어로 써놓으니 뭔가 단순하면서 흔하지 않은 것 같아 좋았고, 뜻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눈치가 없지 않았기 때문에 20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직업인이 되면서 좀 더 성숙한 느낌을 주고자 ID를 새로 만든 게 eoreun이었다. 적은 나이도 아니었는데, 인생을 통틀어 가장 미성숙한 결정을 내린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에는 흡족하게 쓰다가 한 클라이언트가 우연히 두 이메일 주소를 모두 보고 상관관계를 알아버렸을 때 현실을 자각했다. 이제 그 이메일은 광고 메일 수신용으로만 쓰고 있다... 더보기
기침 기침은 내 밤을 갉아먹는다. 사소해 보이는 한 입짜리 공격을 내내 날려서 아침이 되면 초라한 잎맥만 남겨주고 다시 올 밤을 기약하면서 배를 두드린다. 더보기
달을 좋아하는 마음 나는 달을 좋아한다. 그래서 달에 대한 노래도 두 곡이나 썼지만 달이 좋은 이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늘 오랜만에 달을 보며 산책을 하며 처음으로 왜일까 고민해보려는데, 내 안의 다른 목소리가 바로 받아쳤다. "별은 안 보여서 그런 거 아니야?" 틀린 말도 아니었다. 공기 오염 때문이든 인공 불빛 때문이든, 도시에서는 '하늘의 별 보기'가 곧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다. 눈에 안 보이니 마음도 안 갈 수밖에. 별은 가만히 앉아서 좋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부지런히 새까만 하늘을 찾아다니고 별자리를 공부해야만 좋아할 수 있는 존재다. 태양은 너무 흔하다. 아무리 거부해도 기어코 창문 틈새로 들어와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렇다고 제대로 마주할 수도 없다. 그랬다간 내가 다친다. 그런 면에서 달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