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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연지 없는 첫 하루 연지를 완전히 떠나보내고 맞이한 첫 하루. 그다지 슬프지는 않다. 언젠가는 맞이해야 하는 죽음을 좋은 때에 잘 치러낸 것 같아 감사하다. 진짜로 그랬던 건지 너무 긍정적으로 끼워 맞추는 건지는 몰라도 모든 게 시기적절했다고 엄마와 자평했다. 하루 일찍 갔다면 엄마 아빠를 못 보고 갈 뻔했고, 하루 늦게 갔다면 아빠가 일 때문에 화장을 하러 같이 갈 수 없었는데 연지는 날까지 이렇게 잘 잡아서 갔다고. 그래도 허전하고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당장이라도 안고 싶고 뽀뽀도 마구마구 싶다. 그렇다고 다른 강아지를 원치는 않는다. 아무리 귀여운 강아지라도, 설령 연지를 닮은 시츄를 데려다 놔도 연지는 아니니까. 내 방에 연지가 없으니까 거실에 가서 데려오면 될 것만 같은데 거실에 가도 연지가 없다. 화요일은 .. 더보기
사랑해 5월 13일 이른 아침에 연지가 떠났다. 지난 일기를 보니까 식욕이 떨어질까 봐 비장의 메뉴를 처음 준비한 게 7일 밤이었는데, 실패였으니까 식음전폐 닷새만에 갔네. 처절한 시간이었다. 나도 감기에 걸려 하루 종일 기침을 하고 힘들었지만 내가 내 몸을 챙길 순번이 아니었다. 종양 구멍에서 나오는 진물은 점점 걸쭉해지고 냄새도 진해졌다. 양도 늘어서 몇 시간에 한 번씩 드레싱을 갈아줘야 했다. 다만 원래는 거즈 고정시키는 밴드를 떼는 순간에 굉장히 아파했는데 이제 발버둥 칠 기운도 없는지 가만히 있어서 슬프지만 일이 더 수월했다. 구멍도 커져서 이건 뭐 손가락을 넣으면 장기가 닿는 건가 무서울 정도였다. 이 뻥 뚫린 피부를 도로 붙이려면 도대체 뭘 해줘야 하는지 고민이었는데 이제는 필요 없는 고민이 되었다.. 더보기
잠의 나라 아직 세 시간도 못 잤는데 연지 뒤치다꺼리하느라 잠이 깼다. 꿀잠을 자고 있던게 아니라 기침을 하면서 내 기침때문에 누가 악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못 만들고 있어서 눈치보이는 그런 알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래서 잠이 깬게 아깝지 않다. 다시 자야되기는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잠의 나라에 놓고 온게 있어서 찾으러 가야 하는데 그 집 너무 불친절하고 맛도 별로라 돌아가기 싫은 느낌. 더보기
빚쟁이 연지가 밥을 안 먹었다. 식욕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조바심에 비장의 습식사료를 데웠다. 여간해서는 입을 안 열고 혀만 깔짝거리길래, 핥기라도 해 달라는 마음으로 된장 같은 질감의 습식사료를 손으로 집어 입 앞에 갖다 바쳤다. 손은 말할 것도 없고 입고 있던 바지까지 버려가며 드셔 달라고 읍소하는 내 모습이 웃겼다. 엄마한테 말했다. "나 아무래도 전생에 연지한테 크게 빚이라도 졌었나봐." 그랬더니 엄마는 말했다. "난 너한테 빚졌었나봐. 그래서 몇 년을 배 위에 올려놓고 자고." 나는 어릴 때 천식을 가볍지 않게 앓느라 밤에 수시로 기침을 해서, 엄마가 언제든 바로 알아차리고 보살펴주려고 나를 꽤 커서까지 배에 올려놓고 잤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억은 안 나는데 그랬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엄마 나.. 더보기
고름 냄새 지난번에 종양이 터졌던 자리가 딱지로 덮여서 아무는가 했는데, 다시 터지면서 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그전에 터진 자리에서 맑은 물이 줄줄 흐르면서 혹이 쪼그라든 적이 있었다. 며칠 뒤 다시 부풀어 올랐지만 또 물이 나오고 쪼그라들었는데, 나도 어릴 때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등에 호스를 꽂고 딱 그런 주황색 맑은 물을 잔뜩 빼낸 적이 있던 터라 강아지에게도 좋은걸 거라고 안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맑은 물 대신 찐득한 고름이 나왔다. 좋지 않은 냄새도 났다. 늘 그랬듯,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단계 하나에 또 진입한 것 같다. 고름에서 나는 냄새는 꼬릿꼬릿하다고 할까? 엄마가 집에서 청국장을 담글 때 거실에 진동하던 그 냄새랑 확실하진 않지만 비슷했던 것 같다. 그땐 엄마한테 이 냄새가 마음에.. 더보기
피 냄새 연지의 종양에 딱지가 앉았다. 피부가 괴사되는 거라고 한다. 그 딱지 밑으로 종양이 썩어들어가기 때문에 고름을 빼고 드레싱을 해줘야 한다고 한다. 네이버 카페에 어떤 친절한 분이 적어주신 자세한 설명을 따라 멸균 거어즈와 습윤 밴드, 멸균식염수를 샀다. 습윤 밴드는 나도 얼굴에 뾰루지가 났을 때 붙이는거라 익숙하다. 내 얼굴에 붙일 땐 보통 자기 전에 붙였다가 아침에 일어나 허옇게 퉁퉁 불은 밴드를 떼어내는데, 연지한테 붙인 건 잘 한건가 불안해서 몇 시간을 못 기다리고 새로 갈아줬다. 처음 갈아줄 때 딱지 한 덩이가 떨어지고, 두 번째로 갈아줄 때 또 크게 한 덩이가 떨어졌다. 피가 맺힌 종양에 식염수를 부어가며 거즈로 피를 닦아줬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에 닿았다. 나는 비염이 있어서 후각이 약한 편.. 더보기
성공한 인생 소중한 사람이 날 필요로 할 때 언제든 기꺼이 나설 수 있는 사람. 일에 관련된 나의 성공 기준 몇 가지 중 하나다(많은 세속적인 목표와 더불어). 이게 말처럼 간단하진 않다. 우선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거야 백수가 되면 문제 해결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소중한 사람에게 돈을 쓰지는 못할 망정 신세나 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돈을 벌려면 나의 시간을 일에 바쳐야 하므로, 다시 소중한 사람에게 쓸 시간이 부족해진다.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시간에 얽매이는 삶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꽉 묶여있는 시간이 없다는 건 역설적으로 완전히 풀려날 수 있는 시간도 없다는 뜻이다. 직장인이야 퇴근을 하거나 휴일이 되면 (이론적으로는) 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지만, .. 더보기
시원 라떼 나는 라떼를 아주 아주 좋아한다. 라떼를 한 잔도 못 마시면 하루를 제대로 보낸 것 같지 않아서 때를 놓치면 늦게라도 한 잔씩은 마시고 만다. 커피숍에서도 사실 비엔나 커피니 콜드브루니 다양한 커피를 맛보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라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것 같아 선뜻 새로운 커피를 시도하지 못한다. 이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떼는 바로 내가 만든 라떼다. 그냥 폴저스 커피랑 모카포트를 쓰기 때문에 원두가 좋은 것도, 나만의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따뜻한 라떼가 아니지만 얼음을 안 넣는다는 거다. 500ml 정도 되는 머그잔에 2인용 모카포트로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따르고 나머지는 우유를 채운다. 그러면 미지근하지 않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에스프레소보다.. 더보기
락밴드 X 가방 브랜드 협업 스트랩 [제품] 음악 밴드와 패션 브랜드가 협업해 그 밴드의 컨셉에 맞게 특별 디자인한 기타 스트랩을 만든다. 밴드는 콘서트 등에서 그 스트랩을 하고, 브랜드에서는 그 디자인으로 가방 스트랩을 한정판 캡슐 컬렉션으로 판매한다. --- 기타 스트랩은 무대에서 눈에 잘 띄고,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악기의 일부분인 만큼 다른 액세서리보다 음악적 의미도 있어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하면서 음악적인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에 정말 좋은 매체인 것 같은데 스트랩을 따로 제작해서 쓰는 뮤지션은 없는 것 같아서 아쉽다. 검색해보니까 비틀즈 기타 스트랩은 많지만, 팬들이 과거를 추억하는 기념품 정도다. 내가 생각하는 건 지금 활동하는 뮤지션이 새로운 음악과 컨셉에 맞춰, 마치 공연할 때 무대의상을 맞추듯 스트랩도 자기만의.. 더보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해야 하는 일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테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고민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일이 '진짜로 해야 하는 일'은 아니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사실은 안 해도 괜찮은 일을 꼭 해야 하는 하는 일이라고 착각해서 스스로 발목을 묶어놓고는 빠져나갈 수 없다고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