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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여행, 태도의 발견

독일은 지금껏 다녀본 나라 중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였다. 사실 '이 나라는 어떻고 저 나라는 어떻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여러 나라를 경험해본 것도, 인종차별이라는 심각한 주제에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 만큼 설움을 겪어본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껏 동서양의 이곳저곳을 소소하게 다녀 본 중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기분을 선사한 유일한 나라가 독일이었다. 


베를린에 시작해 프랑크푸르트로 내려가고, 기차를 타고 남부의 몇몇 마을을 거친 뒤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와 며칠을 더 머물다 가는 2주 일정이었다. 다른 도시들을 거쳐 근 열흘 만에 돌아온 베를린은 괜히 익숙하게 느껴졌더랬다. 독일어 앱에 나오는 "영수증 좀 주세요" 같은 문장을 따라 하는 발음도 (내 생각에는) 점점 자연스러워지던 차였다. 


독일 여행이 결정 난 뒤부터, 주방용품에 관심이 많은 엄마는 휘슬러 밥솥을 사 오면 어떻냐는 제안을 넌지시 건네 왔었다. 요리에 털끝만큼도 관심 없는 나이기에, 처음으로 찾은 베를린에서 밥솥 쇼핑에 시간과 체력을 할애할 뜻은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온 베를린에서는 독일의 백화점도 구경할 겸 쇼핑이라는 걸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베를린에서 가장 크다는 카데베 백화점으로 향했다. 


주방용품은 저 위층에 있었지만 1층부터 매장들을 둘러보았다. 그중에는 내가 클라이언트로 둔 명품 브랜드의 매장도 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입장했다. 여기저기 헤진 청자켓과 지그재그 무늬의 레깅스 차림이 좀 멋쩍었다. 이윽고 멋쩍을 필요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점원들은 나를 쳐다도 보지 않으니까! 그 브랜드는 나의 클라이언트로, 나는 점원들이 손님을 맞이할 때 지켜야 하는 규칙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이 내게 독립적으로 쇼핑할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뭐, 나도 딱히 뭘 사려던 건 아니니 셈 셈으로 치자. 내 행색이 그렇게 초라했니. 찝찝한 마음에 아이쇼핑을 멈추고 주방용품이 있는 위층으로 직행했다.


한국에서도 와본 적 없는 주방용품 코너에 도착해 마침내 휘슬러 매장을 찾았다. 엄마가 원하던 치수의 밥솥이 보이지 않아서 점원에게 물어보았다.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갈색 단발머리의 백인 여자였다. 나는 (이 정도 대화에는) 유창한 영어와 앱으로 배운 근본 없는 독일어를 섞어가면서 말을 걸었다. 대답은 이랬다.


"오전까지는 있었는데 다 팔렸어요. '당신네 사람들(your people)'이 쓸어갔거든요."


딱 꼬집어 말할 수도 없지만, 완전히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불쾌감이 밀려왔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 인종차별을 감지하는 예민한 촉이 발달된 건 아니지만 "제가 한 발 늦었네요 하하하"라고 답할 만큼 속이 없진 않았다. 언제 재입고가 되는지도 모른다는 퉁명한 대답에 "시간 내서 왔는데 엄마가 아쉬워할 텐데" 같은 무의미한 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갔다. 


별 뜻 없는 표현을 괜히 부정적으로 확대 해석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점원의 말을 자꾸만 되뇌었다. "My people이 누구를 말하는 거죠?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고?" "우리 가족이라도 왔다 갔나요?" 등등 각종 대사를 떠올려가며 점원에게 빈정대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기대에 부풀었던 독일 백화점 나들이는 그렇게 찝찝한 기분만을 남기고 끝나려던 차였다.


출입구 문을 열고 나섰다. 마침 휠체어에 탄 사람이 백화점에 들어가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고, 그 뒤에는 휠체어를 밀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이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려면 휠체어를 밀던 사람은 앞으로 달려와 문을 열어야 하고, 다시 돌아와서 휠체어를 밀던 앉아있는 사람이 직접 휠체어를 밀던 어떻게든 번거로운 상황이 연출되겠지.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아가,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두 사람이 나를 보며 고맙다고 인사하고, 간편하게 문을 통과했다. 


기분이 제법 나아졌다. 감사인사를 듣고 기분이 좋아지는 건, 불친절한 점원에게 쏘아붙이는 쾌감만큼 짜릿하고 통쾌할 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쎈언니로 빙의해서 점원에게 망신이라도 줬다고 한들, 뭘 어쨌겠는가. 외국에서의 무용담 하나쯤 만들 수 있었을까? 시간을 잃고, 좋은 기분과 추억을 잃어가면서? 만약 그 점원이 나보다 훨씬 쎈언니라서 내가 오히려 시원하게 한 방을 먹었다면 그 굴욕감은 어떻게 감당했을까? 베를린이라는 도시, 아니 독일이라는 나라는 다시는 찾고 싶지 않은 최악의 나라로 기억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당한 불친절을 엉뚱한 사람을 향한 친절로 갚기. 꽤 괜찮은 상쇄 활동이었다. 이걸 '복수'라 하기로 했다. 나만 아는 복수. 기분 좋아지면 그만인 복수. 


일상에 지쳐있을 때 꿈꾸는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늘 달콤하고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은 사실 그렇게 꿈같지만은 않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 현지인의 푸근한 미소와 친절만 있을 수는 없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싸구려 기념품을 사며 바가지를 쓰기도 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주눅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불상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여행의 기쁨을 지켜나가는 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는 여행법이 아닐까 한다.


덕분에 나는 언제든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다시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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