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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5월 5월 초부터 나를 괴롭혀온 감기가 드디어 마침내 이제야 끝을 보이는 것 같다. 원래 좀 허약 체질이긴 해도 이 정도로 징글징글하게 기침을 하는 건 연지가 가족이 된 후로 처음이다. 사실은 나이가 들어서 천식이 재발하는 건가 두려워서 병원에 물어봤는데, 감기가 들어서는 시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면 면역력이 약해져서 평소보다 더 아플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감기 초반에 강아지가 죽었다고 했는데, 사실 TMI라고 생각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진료 차트에까지 기록해놓으셨다(이렇게 해서 연지는 내 진료 차트에 두 번이나 족적을 남겼다. 안과 차트에는 강아지한테 눈 긁혀서 각막에 상처 났다는 기록이 있더라 이 똥깨야). 그런 거라면 내가 온몸으로 연지를 장렬하게 배웅해주는 것 같아서 나쁘지 않다. 자고로 '연지.. 더보기
[단어] 울적지근 새 단어를 만들었다. 울적지근하다: 마음이 아프고 갑갑하다. 한 마디로 기분이 뻑적지근하다. 혹시 이미 있는 단어인가 하고 찾아봤는데 사전에는 없다. 사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이미 이 단어를 써온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블로그랑 지식인 포함해서 딱 7개 나오니까 내가 지금부터 열심히 밀어줘야지. 이 블로그 보게 되는 사람들도 발견하고 많이많이 써줬으면 좋겠다. 그럼 울적지근한 마음이 시원하게 풀리겠지! 더보기
ID 변천사 aeki라는 ID는 중2 때였나 중3 때였나 처음 인터넷 세계에 입문하면서 내가 만든 캐릭터 이름을 가져다 붙인 거였다. 사실 집에서 불리는 애칭이기도 했는데 한글로 쓰면 좀 그렇지만 영어로 써놓으니 뭔가 단순하면서 흔하지 않은 것 같아 좋았고, 뜻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눈치가 없지 않았기 때문에 20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직업인이 되면서 좀 더 성숙한 느낌을 주고자 ID를 새로 만든 게 eoreun이었다. 적은 나이도 아니었는데, 인생을 통틀어 가장 미성숙한 결정을 내린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에는 흡족하게 쓰다가 한 클라이언트가 우연히 두 이메일 주소를 모두 보고 상관관계를 알아버렸을 때 현실을 자각했다. 이제 그 이메일은 광고 메일 수신용으로만 쓰고 있다... 더보기
기침 기침은 내 밤을 갉아먹는다. 사소해 보이는 한 입짜리 공격을 내내 날려서 아침이 되면 초라한 잎맥만 남겨주고 다시 올 밤을 기약하면서 배를 두드린다. 더보기
달을 좋아하는 마음 나는 달을 좋아한다. 그래서 달에 대한 노래도 두 곡이나 썼지만 달이 좋은 이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늘 오랜만에 달을 보며 산책을 하며 처음으로 왜일까 고민해보려는데, 내 안의 다른 목소리가 바로 받아쳤다. "별은 안 보여서 그런 거 아니야?" 틀린 말도 아니었다. 공기 오염 때문이든 인공 불빛 때문이든, 도시에서는 '하늘의 별 보기'가 곧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다. 눈에 안 보이니 마음도 안 갈 수밖에. 별은 가만히 앉아서 좋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부지런히 새까만 하늘을 찾아다니고 별자리를 공부해야만 좋아할 수 있는 존재다. 태양은 너무 흔하다. 아무리 거부해도 기어코 창문 틈새로 들어와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렇다고 제대로 마주할 수도 없다. 그랬다간 내가 다친다. 그런 면에서 달은 .. 더보기
연지 없는 첫 하루 연지를 완전히 떠나보내고 맞이한 첫 하루. 그다지 슬프지는 않다. 언젠가는 맞이해야 하는 죽음을 좋은 때에 잘 치러낸 것 같아 감사하다. 진짜로 그랬던 건지 너무 긍정적으로 끼워 맞추는 건지는 몰라도 모든 게 시기적절했다고 엄마와 자평했다. 하루 일찍 갔다면 엄마 아빠를 못 보고 갈 뻔했고, 하루 늦게 갔다면 아빠가 일 때문에 화장을 하러 같이 갈 수 없었는데 연지는 날까지 이렇게 잘 잡아서 갔다고. 그래도 허전하고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당장이라도 안고 싶고 뽀뽀도 마구마구 싶다. 그렇다고 다른 강아지를 원치는 않는다. 아무리 귀여운 강아지라도, 설령 연지를 닮은 시츄를 데려다 놔도 연지는 아니니까. 내 방에 연지가 없으니까 거실에 가서 데려오면 될 것만 같은데 거실에 가도 연지가 없다. 화요일은 .. 더보기
사랑해 5월 13일 이른 아침에 연지가 떠났다. 지난 일기를 보니까 식욕이 떨어질까 봐 비장의 메뉴를 처음 준비한 게 7일 밤이었는데, 실패였으니까 식음전폐 닷새만에 갔네. 처절한 시간이었다. 나도 감기에 걸려 하루 종일 기침을 하고 힘들었지만 내가 내 몸을 챙길 순번이 아니었다. 종양 구멍에서 나오는 진물은 점점 걸쭉해지고 냄새도 진해졌다. 양도 늘어서 몇 시간에 한 번씩 드레싱을 갈아줘야 했다. 다만 원래는 거즈 고정시키는 밴드를 떼는 순간에 굉장히 아파했는데 이제 발버둥 칠 기운도 없는지 가만히 있어서 슬프지만 일이 더 수월했다. 구멍도 커져서 이건 뭐 손가락을 넣으면 장기가 닿는 건가 무서울 정도였다. 이 뻥 뚫린 피부를 도로 붙이려면 도대체 뭘 해줘야 하는지 고민이었는데 이제는 필요 없는 고민이 되었다.. 더보기
잠의 나라 아직 세 시간도 못 잤는데 연지 뒤치다꺼리하느라 잠이 깼다. 꿀잠을 자고 있던게 아니라 기침을 하면서 내 기침때문에 누가 악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못 만들고 있어서 눈치보이는 그런 알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래서 잠이 깬게 아깝지 않다. 다시 자야되기는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잠의 나라에 놓고 온게 있어서 찾으러 가야 하는데 그 집 너무 불친절하고 맛도 별로라 돌아가기 싫은 느낌. 더보기
빚쟁이 연지가 밥을 안 먹었다. 식욕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조바심에 비장의 습식사료를 데웠다. 여간해서는 입을 안 열고 혀만 깔짝거리길래, 핥기라도 해 달라는 마음으로 된장 같은 질감의 습식사료를 손으로 집어 입 앞에 갖다 바쳤다. 손은 말할 것도 없고 입고 있던 바지까지 버려가며 드셔 달라고 읍소하는 내 모습이 웃겼다. 엄마한테 말했다. "나 아무래도 전생에 연지한테 크게 빚이라도 졌었나봐." 그랬더니 엄마는 말했다. "난 너한테 빚졌었나봐. 그래서 몇 년을 배 위에 올려놓고 자고." 나는 어릴 때 천식을 가볍지 않게 앓느라 밤에 수시로 기침을 해서, 엄마가 언제든 바로 알아차리고 보살펴주려고 나를 꽤 커서까지 배에 올려놓고 잤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억은 안 나는데 그랬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엄마 나.. 더보기
고름 냄새 지난번에 종양이 터졌던 자리가 딱지로 덮여서 아무는가 했는데, 다시 터지면서 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그전에 터진 자리에서 맑은 물이 줄줄 흐르면서 혹이 쪼그라든 적이 있었다. 며칠 뒤 다시 부풀어 올랐지만 또 물이 나오고 쪼그라들었는데, 나도 어릴 때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등에 호스를 꽂고 딱 그런 주황색 맑은 물을 잔뜩 빼낸 적이 있던 터라 강아지에게도 좋은걸 거라고 안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맑은 물 대신 찐득한 고름이 나왔다. 좋지 않은 냄새도 났다. 늘 그랬듯,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단계 하나에 또 진입한 것 같다. 고름에서 나는 냄새는 꼬릿꼬릿하다고 할까? 엄마가 집에서 청국장을 담글 때 거실에 진동하던 그 냄새랑 확실하진 않지만 비슷했던 것 같다. 그땐 엄마한테 이 냄새가 마음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