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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ID 변천사

aeki라는 ID는 중2 때였나 중3 때였나 처음 인터넷 세계에 입문하면서 내가 만든 캐릭터 이름을 가져다 붙인 거였다. 사실 집에서 불리는 애칭이기도 했는데 한글로 쓰면 좀 그렇지만 영어로 써놓으니 뭔가 단순하면서 흔하지 않은 것 같아 좋았고, 뜻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눈치가 없지 않았기 때문에 20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직업인이 되면서 좀 더 성숙한 느낌을 주고자 ID를 새로 만든 게 eoreun이었다. 적은 나이도 아니었는데, 인생을 통틀어 가장 미성숙한 결정을 내린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에는 흡족하게 쓰다가 한 클라이언트가 우연히 두 이메일 주소를 모두 보고 상관관계를 알아버렸을 때 현실을 자각했다. 이제 그 이메일은 광고 메일 수신용으로만 쓰고 있다. 

 

사실 그 다음으로 만들어서 지금도 쓰고 있는 업무용 이메일 주소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만들고 싶지만 그 후로 내 커리어가 너무 많이 발전해서 앞으로도 그냥 살게 될 것 같다. 한국 클라이언트한테 이메일 주소 불러줄 때 3초 정도만 멋쩍으면 된다. 

 

이 와중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aeki라는 ID를 살려서 역서 프로필에까지 넣고 있는 건 자칭 철없는 어른이라서는 아니다. 늘 이제는 버릴 때가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버려지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의미를 부여해보자니 aeki는 그때부터 내가 꾸기 시작했고 여전히 종종 되새기는 원대한 꿈의 시초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무의식이 자꾸 챙겨주나 보다. 다른 사람한테 이 ID를 내보일 때면 안 그런 척 하면서도 늘 민망했는데 이제 좀 더 당당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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