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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고름 냄새

지난번에 종양이 터졌던 자리가 딱지로 덮여서 아무는가 했는데, 다시 터지면서 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그전에 터진 자리에서 맑은 물이 줄줄 흐르면서 혹이 쪼그라든 적이 있었다. 며칠 뒤 다시 부풀어 올랐지만 또 물이 나오고 쪼그라들었는데, 나도 어릴 때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등에 호스를 꽂고 딱 그런 주황색 맑은 물을 잔뜩 빼낸 적이 있던 터라 강아지에게도 좋은걸 거라고 안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맑은 물 대신 찐득한 고름이 나왔다. 좋지 않은 냄새도 났다. 늘 그랬듯,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단계 하나에 또 진입한 것 같다. 

고름에서 나는 냄새는 꼬릿꼬릿하다고 할까? 엄마가 집에서 청국장을 담글 때 거실에 진동하던 그 냄새랑 확실하진 않지만 비슷했던 것 같다. 그땐 엄마한테 이 냄새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걸 어필하려 일부러 더 인상을 쓰고 다녔는데, 연지의 고름 냄새에는 얼굴이 찌푸려지지 않는다. 아직 심하지 않은 건지 냄새가 약하기도 하지만, 정말 심한 냄새가 나더라도 오히려 더 활짝 웃어야 할 거다. 걱정하는 기운이 연지한테 전해지면 안 되니까. 

사람의 암세포 냄새를 맡아 초기에 암을 발견하게 해준다는 개들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믿기지는 않았었다. 아무리 후각이 발달했어도 무슨 냄새가 어떻게 난다고, 냄새가 난들 그게 나쁜 물질인지 어떻게 안다고 개가 그걸 발견한다는 건가. 그런 개들이 맡는 냄새도 지금 내가 맡는 이런 냄새일까? 그렇다면 납득이 간다. 몸에서 난다고 하기에는 잘못된 냄새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데 핥는 소리가 나서 보니까 또 물이 나왔다. 저번에는 물이 빠지고 혹이 쪼그라든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피부가 워낙 늘어난 상태라서 그런지 콩주머니 같은 거에서 내용물을 한움큼 뺀 것 같다. 그리고 물이 빠질 때 눌려있던 상태대로 혹 모양이 잡히는데 쭉덕하니 안 이쁘게 찌그러진 것 같아 모양을 새로 잡아주는 여유도 부렸다. 

무엇보다도 다행이고 감사한 건 밥을 잘 먹는다는 거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은' 밥을 잘 먹는다. 내가 아무리 간절히 바라고 노력해도 결국은 오게 될 시간이 있다는 걸 슬슬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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