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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사랑해

5월 13일 이른 아침에 연지가 떠났다. 

지난 일기를 보니까 식욕이 떨어질까 봐 비장의 메뉴를 처음 준비한 게 7일 밤이었는데, 실패였으니까 식음전폐 닷새만에 갔네. 처절한 시간이었다. 나도 감기에 걸려 하루 종일 기침을 하고 힘들었지만 내가 내 몸을 챙길 순번이 아니었다.

종양 구멍에서 나오는 진물은 점점 걸쭉해지고 냄새도 진해졌다. 양도 늘어서 몇 시간에 한 번씩 드레싱을 갈아줘야 했다. 다만 원래는 거즈 고정시키는 밴드를 떼는 순간에 굉장히 아파했는데 이제 발버둥 칠 기운도 없는지 가만히 있어서 슬프지만 일이 더 수월했다. 구멍도 커져서 이건 뭐 손가락을 넣으면 장기가 닿는 건가 무서울 정도였다. 이 뻥 뚫린 피부를 도로 붙이려면 도대체 뭘 해줘야 하는지 고민이었는데 이제는 필요 없는 고민이 되었다. 

10일, 그러니까 금요일부터 일요일 오후까진 부모님이 약속과 제사 때문에 집을 비웠다. 아픈 나와 더 아픈 연지만 남았다. 진물이 계속 나오면 빈혈이 생긴다고 해서 철분이 많고 암에 좋다는 비트를 사 왔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계란도 삶고 비트랑 겨우살이 물이랑 같이 갈아서 액체로 만들었다. 비트는 색이 참 진하고 곱다. 모르긴 몰라도 염료 만드는 재료로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입도 제대로 벌려주지 않는 연지의 이빨 사이에 주사기를 넣고 비트+계란 스무디를 밀어 넣어 주었다. 연지의 반응이 좋지 않아서 빨간 비트즙이 입 주변에 잔뜩 묻는 바람에 꼭 립스틱을 바른 것 같았다. 

밥 먹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배경음악을 무작위로 재생시켜 놓았는데 아이유의 '무릎'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 지친 것 같아,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것 같아" 지친 연지가 노래 가사를 빌려 나한테 하는 말 같아서 서글펐다. 

금요일 밤부터였나, 연지가 이상 행동을 보였다. 누워있는데 숨 쉴 때마다 항문에 힘을 주는 거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소정의 성과를 본 다음에도 힘주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런 행동은 가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몸속에 있는 걸 전부 빼고 가려는 행동이었던 것 같다. 먹는 것도 없으면서 배출만 열심히 해대니 조바심이 나서 어떻게든 더 먹여보려고 노력했는데 괜히 연지한테 일만 늘려준 셈이었나 싶다.

마지막에 정말 힘들었던 건 이렇게 힘을 주면서 한두 시간에 한 번씩 찐득한 대변을 빼내기 때문이었다. 무려 누워서! 내가 무릎에 앉히고 밥을 먹이고 있으면 바지에 변을 묻혀놓고, 좀 진정된 것 같아서 배변패드보다 포근한 이불 위에 올려주면 또 성과를 내고. 그래서 주말 내내 빨래를 몇 번 했는지 셀 수가 없다. 빨래하다 말고 엉엉 울기도 했다. 나도 지친 마음을 시원하게 배출하고 눈물 닦고 현실로 돌아오는 거다. 

겨우 며칠이지만 지나고나니 감사한 건, 시시때때로 변을 빼내는 연지를 계속 닦이고 씻기느라 마지막 며칠간 원 없이 안고 보듬어줬다는 거다. 얌전히 누워서 앓고 있었다면 옆에서 보기만 했을 텐데. 원래 사후에 근육에 힘이 빠지면서 배설물이 줄줄 흘러나온다고 하는데 연지는 스스로 말끔하게 비우고 간 덕분에 깨끗한 몸으로 갈 수 있었다. 존경한다 너의 선견지명. 

일요일 오후에 부모님이 돌아와서 나도 부담을 덜었고, 연지도 기운이 더 빠졌는지 보살피기 수월해졌다. 이제 항문 힘주기를 멈춘 것 같아서 무릎에 올려놓고 일을 하고, 잘 땐 가까이에 뉘어놓았다. 가끔 소리를 지르고 경련의 징조처럼 손 끝이 오그라드는데 그때마다 바로 마사지를 해서 풀어줬더니 가기 직전에 보인다는 경련을 한 번도 안 하고 지나갔다. 원래는 감기 걸리면 새벽마다 기침을 해서 잠을 잘 못 자는 게 너무 싫은데, 이번엔 제대로 잠들지 못해서 연지가 힘들어하는 소리를 그때그때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침 6시쯤 연지가 구토와 소변을 연달아 했다. 위아래로 펼쳐진 액체의 향연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엄마를 불렀고, 같이 수습을 하던 중 엄마가 안고 있던 연지를 내려놓는데 연지의 몸에서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끝이었다. 인터넷에서 봐 둔 대로 혀를 입 안으로 넣어주었다. 귀는 일부러 제껴주었다. 원래 날개 팔락이는 것 같아서 귀 제낀 모습을 좋아했는데,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가는 길에 제껴주니 더 잘 어울렸다. 

나는 언젠가 맞이할 연지의 죽음을 생각하면 늘 엄마의 품에서 눈을 감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나는 아니지만 연지한테 가장 포근한 대상이 엄마인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리고 이미 오래 살았으니, 고통과 함께 삶을 연장하느니 단 1초라도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만 누리다가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연지는 그런 내 바람에 딱 맞게 눈을 감아주었다. 

조금은 낯설어졌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연지의 몸을 서늘한 현관에 고이 눕혀뒀다. 점심땐 언니가 와서 오랜만에 조카 없이 수다를 떨었다. 여섯 살인 조카는 작년에 키우던 달팽이 피피가 저세상에 간 걸 인정하지 못하고 겨울잠을 자는 거라고 주장하다가 작년 추석부터 올해 4월까지 겨울잠을 자는 모습을 보고 이제야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언니가 간 다음에는 쓰러져 낮잠을 잤다. 연지가 앓는 동안에는 긴장해서인지 잠이 별로 오지 않았는데, 이제 보살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나 보다. 저녁때 아빠가 오시고 드디어 화장장으로 향했다. 

원래 우리 가족은 연지를 집에 두고 다 같이 외출할 때 항상 거실이든 방이든 한 곳에 불을 켜놨었다. 날이 어두워졌는데 연지가 밝은 곳에 있고 싶어 할 경우에 대비해. 오늘은 불을 남김없이 끄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때면 나는 아빠가 주차를 마치기 전에 먼저 나와서 서둘러 집에 들어가곤 했다. 연지한테 1초라도 빨리 귀가 신고를 하고 싶어서. 하지만 오늘은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깜깜한 집에 불을 켰다. 

이제는 남은 보조제들을 팔아야 한다. 한 번에 넉넉히 주문하면서 이걸 다 쓸 수 없게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일단 사놓으면 먹이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아 일부러 돈을 아끼지 않았던 결과물이 잔뜩 쌓여있다. 그리고 연지가 내려다보고 흐뭇해할 수 있게, 멋지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 

우리 연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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