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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잔인한 5월

5월 초부터 나를 괴롭혀온 감기가 드디어 마침내 이제야 끝을 보이는 것 같다. 원래 좀 허약 체질이긴 해도 이 정도로 징글징글하게 기침을 하는 건 연지가 가족이 된 후로 처음이다. 사실은 나이가 들어서 천식이 재발하는 건가 두려워서 병원에 물어봤는데, 감기가 들어서는 시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면 면역력이 약해져서 평소보다 더 아플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감기 초반에 강아지가 죽었다고 했는데, 사실 TMI라고 생각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진료 차트에까지 기록해놓으셨다(이렇게 해서 연지는 내 진료 차트에 두 번이나 족적을 남겼다. 안과 차트에는 강아지한테 눈 긁혀서 각막에 상처 났다는 기록이 있더라 이 똥깨야). 그런 거라면 내가 온몸으로 연지를 장렬하게 배웅해주는 것 같아서 나쁘지 않다. 자고로 '연지 때문'은 우리집에서 뭐든지 허락되게 해주는 만능열쇠니까. 

격한 기침은 기억에서 지워져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게 해주는 연결고리 같다. 그때 나는 숨이 차다는 등의 말을 했고, 자세가 구부정하다는 꾸중을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천식 치료가 슬슬 효과를 보이면서 언제부턴가, 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숨이 차다는 건지, 내가 그 어린 나이에 뭘 알고 그런 표현을 썼던 건지 이해되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진짜로 숨이 차서 숨이 차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상태를 몸으로 다시 배웠다(그래서 나는 아픈 곳이 늘 때마다 이해할 수 있는 어휘가 같이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땐 허리 펴라는 얘기를 들을 때면 내가 배에 살이 너무 없어서 지지대 역할을 못하니까 몸이 구부정한 거라고 혼자 추정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기침을 연달아하니까 상체가 절로 구부러진다. 허리를 펴면 숨이 더 차서 구부정한 자세가 더 편하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배웠다. 이게 뭐라고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그래도 이런게 아이라면 나는 어른이 될래. 

이 시간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활용해보고자 복근 운동하는 기분으로 기침이 나올 때마다 신경써서 배에 힘을 주고 있다. 매번은 아니라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힘 줄 기회가 굉장히 많다. 덕분에 요즘 갈비뼈 부근 근육이 땡기는데, 원래 기침 많이 하면 아파지는 부위가 아니라서 정확한 지점에 힘을 잘 준 건지 뭔지 모르겠다. 필라테스 선생님한테 자랑하면 칭찬해 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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