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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빚쟁이

연지가 밥을 안 먹었다.

식욕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조바심에 비장의 습식사료를 데웠다.

여간해서는 입을 안 열고 혀만 깔짝거리길래, 핥기라도 해 달라는 마음으로 된장 같은 질감의 습식사료를 손으로 집어 입 앞에 갖다 바쳤다. 손은 말할 것도 없고 입고 있던 바지까지 버려가며 드셔 달라고 읍소하는 내 모습이 웃겼다. 

엄마한테 말했다. 

"나 아무래도 전생에 연지한테 크게 빚이라도 졌었나봐." 

그랬더니 엄마는 말했다. 

"난 너한테 빚졌었나봐. 그래서 몇 년을 배 위에 올려놓고 자고." 

나는 어릴 때 천식을 가볍지 않게 앓느라 밤에 수시로 기침을 해서, 엄마가 언제든 바로 알아차리고 보살펴주려고 나를 꽤 커서까지 배에 올려놓고 잤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억은 안 나는데 그랬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엄마 나이나 지금의 내 나이나 비슷했겠다. 연지는 내 새끼는 아니고 동생이자 친구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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