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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행 ⑤ - 피렌체 친퀘테레에서부터 기차로 피사를 거쳐 피렌체역에 도착했다. 어두워져가는 하늘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나는 어디 가든 날씨 운이 좋은 편이었고 불쾌한 일도 거의 겪어본 적 없었는데, 이번에는 날씨 운이 좋지 않아 전반적인 운도 덩달아 나빠졌던 걸까? 숙소로 향하는 길부터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마찰이 생겼다. 그는 여러가지로 상황이 꼬여서 체크인 시간이 40분 늦어진 것에 대해 추가요금 30유로를 요구했다. 지치고 짜증난 내가 어깨에 메고 있던 노트북 배낭을 침대에 내팽개쳤더니 "예의를 갖추라"며 나를 나무랐다. 나는 "내가 너한테 뭘 어쨌다고 나더러 예의를 갖추라고 하냐, 니가 오는 법 제대로 안 가르쳐주는 바람에 고생해서 오느라 비도 맞고 어깨가 무거워서 가방도 못 내려놓냐, 그냥 30유로 받고 가.. 더보기
이탈리아 여행 ④ - 친퀘테레와 피사 밀라노를 떠나 친퀘테레에 가는 날. 관광을 했다기엔 딱히 본 게 없고 일을 열심히 했다기에도 애매했던 밀라노에서의 마지막 날이 왔다. 나에게 밀라노 최고의 명소였던 에어비앤비를 떠나는 게 제일 아쉬웠다. 호스트는 오늘 아침에도 우아하게 로브를 걸치고 커피를 마시며 드넓은 거실 한 켠 작업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짐만 놓고 시내 구경을 하다가 오후에 돌아와서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자기는 병원에 다녀와야 하는데 떠나기 전에 다시 얼굴을 봤으면 좋겠다며 돌아올때쯤 전화를 해달라고 하셨다. 첫 날 내가 같은 일을 한다고 반가워했을 때 새침하셔서 질척거리지 않겠다 다짐했던 마음이 풀렸다. 결국 시간이 엇갈려 다시 만나진 못했지만 에어비앤비로 반가웠다는 메시지도 보내주셔서 밀라노 최고의 추억으로 남았다... 더보기
이탈리아 여행 ③ - 밀라노 밀라노에서의 둘째 날 일정은 카페 투어! 원래 코모 호수에 가고 싶었던 날이지만 일은 해야하니 어쩔 수 없었다. 내 계획은 밀라노의 공공자전거 '바이크미'를 타고 카페 한 군데에 가서 일하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 때 쯤이면 또 자전거를 타고 다른 카페로 이동하면서 카페 4~5군데에는 가서 일도 하고 분위기도 즐기고 다양한 커피를 맛보는 거였다. 일단 카페는 인테리어, 분위기 보다도 '일하기 좋은 카페'를 찾아야 해서 선택지가 많진 않았다. 우리 동네에 있는 '일하기 좋은 카페'만 세어봐도 밀라노 전체에 있는 것보다 많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자전거 타고 바람을 쐬며 관광지를 벗어난 거리를 구경하고, 예쁜 카페에서 사진도 찍으면 디지털 노마드적이고 인스타그램적인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바이크미는 무려 .. 더보기
이탈리아 여행 ② - 밀라노 베네치아 다음으로 향한 도시는 밀라노. 숙소는 중앙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대로변이라서 길치인 나도 구글 지도만 보고도 충분히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유독 상세하게 찾아오는 법을 알려줬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오른쪽으로 50m를 걸어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밖으로 나오면 30m 직진하다가 공원을 왼쪽에 두고 맞은편 오른쪽 인도로 걸어와라' 이런 수준으로. 뻥 뚫린 중앙옆 앞에서 대각선으로 바로 보이는 건물까지 가는데 굳이 이런 설명이 필요할까 의아하면서도 지령을 받은 첩보원이 된 기분으로 설명을 따라 길을 걸었다. 설명 따라 가는데 신경쓰느라 주변을 많이 둘러보진 못했지만 언뜻 본 공원은 노숙자들이 점령한 상태라 아름답지 않았다. 같은 방향이지만 시키는대로 차도 건너편 오.. 더보기
이탈리아 여행 ① - 베네치아 베네치아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새까만 활주로가 비에 젖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제 짐을 찾은 다음 버스를 타고 에어비앤비 숙소로 가기만 하면 됐다. 별로 비가 오는 게 걱정이긴 하지만 트렁크를 찾으면 우산을 꺼내고 두꺼운 옷도 껴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내 트렁크는 나오지도 않았다. 빨간색 바탕에 무지개색 띠까지 매놓은 가방이 눈에 띄지 않을 리 없는데도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분실물 신고를 하고 공항을 나섰다. 비내리는 밤 한 손으로는 우산 들고 한 손으로는 트렁크를 끌며 초행길을 가기가 막막했는데 뭐 몸은 가뿐해서 좋았다. 자정이 다돼서 메스트레에 있는 에어비앤비에 도착했다. 친절한 모녀 호스트의 환대를 받으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렇게 방을 안내받고 다시 혼자가.. 더보기
  드디어 감기가 나아간다. 이제야 좀 새해를 맞이할 기분이 든다. 얇은 코트정도 두께에 기장이 종아리까지 오는 로브를 며칠 동안 내 몸의 일부인듯 걸치고 있었다. 오한이 있어서 로브를 안 입으면 이불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몸을 거의 다 덮어주니까 포근하고, 따뜻하고, 계속 이불 속에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런데 오늘 병원에서 수액까지 맞고 한결 거뜬해진 몸으로 다시 로브를 걸치려니까 와 덥고 무겁고 어쩜 이렇게 거추장스럽지.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더보기
혼자 올해는 유독 혼자인 해였다. 2월에 있었던 생일부터 태국에서 혼자 보냈고, 크리스마스에는 집에서 인터넷도 끊긴 채로 연지 돌보며 보냈고, 마지막 날인 오늘은 몸이 아파서 부모님과 함께 집에서 보내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그냥 그렇지만 12월 31일은 특별한 기분이라 늘 약속이 없으면 혼자서라도(사실 혼자가 더 좋다) 밖에 나가서 혼자 한 해를 곱씹었다. 그래서 한 해의 마지막 날 집에 있는 게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날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혼자인 때가 많았다. 우선 몇 년만에 솔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는 돈을 벌기 시작한 이래 최고로 일을 많이 해서 새로운 사람은 커녕 친구들 만날 시간도 별로 없었다. 그만큼 내 커리어가 발전한 걸까? 회사라서 승진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좋은 책을 두 권 맡.. 더보기
오늘의 깨달음 - 장발장에 대하여 오늘은 가족의 날. 언니네가 집에 와서 김장 김치와 수육을 먹는데 아빠가 장만한 웬 은주전자를 보면서 대화 시작. 언니: 장발장이 훔쳤을 법한 은주전자네 나: 장발장이 훔쳤던 건 빵 아니야? (나 레미제라블 영화 극장에서 두 번 봤는데..) 언니: 처음엔 빵 훔쳤고 나중에 은촛대를 훔쳤는데 신부님이 감싸줬잖아 나: 그 신부님도 자기 돈 주고 산거 아니라서 봐줬을 거야. 헌금으로 샀겠지. 모두: 그렇네!!! 더보기
가을 산책 주말이 지나면 단풍은 떨어지고 미세먼지가 가득할 줄 알았는데 쾌청하고 나무는 아직 울긋불긋해서 설렜던 가을날. 일이 많아서 멀리 나가지는 못하지만 어떻게든 가을을 즐기기로 했다. 나 혼자 우리 동네의 꽤 괜찮은 개천에 가서 조깅을 하면서 단풍을 마음껏 보고 올까. 아니면 하루종일 누워 계시지만 산소를 많이 마시는게 좋다는 우리 강아지님을 모시고 아파트 뒤뜰 겸 분리수거장에 나가서, 몇 그루 있는 나무와 쓰레기 더미를 감상하며 빙글빙글 맴을 도는 강아지님 옆에 심심하게 서있어 볼까. 오늘은 뒤뜰 당첨이다. 그래 개천이 아무리 좋아봤자 니가 있는 풍경만큼 좋을 리가 있나. 너 있는게 최고지. 더보기
여행, 태도의 발견 독일은 지금껏 다녀본 나라 중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였다. 사실 '이 나라는 어떻고 저 나라는 어떻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여러 나라를 경험해본 것도, 인종차별이라는 심각한 주제에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 만큼 설움을 겪어본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껏 동서양의 이곳저곳을 소소하게 다녀 본 중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기분을 선사한 유일한 나라가 독일이었다. 베를린에 시작해 프랑크푸르트로 내려가고, 기차를 타고 남부의 몇몇 마을을 거친 뒤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와 며칠을 더 머물다 가는 2주 일정이었다. 다른 도시들을 거쳐 근 열흘 만에 돌아온 베를린은 괜히 익숙하게 느껴졌더랬다. 독일어 앱에 나오는 "영수증 좀 주세요" 같은 문장을 따라 하는 발음도 (내 생각에는) 점점 자연스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