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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연지 없는 첫 하루

연지를 완전히 떠나보내고 맞이한 첫 하루. 

그다지 슬프지는 않다. 언젠가는 맞이해야 하는 죽음을 좋은 때에 잘 치러낸 것 같아 감사하다. 진짜로 그랬던 건지 너무 긍정적으로 끼워 맞추는 건지는 몰라도 모든 게 시기적절했다고 엄마와 자평했다. 하루 일찍 갔다면 엄마 아빠를 못 보고 갈 뻔했고, 하루 늦게 갔다면 아빠가 일 때문에 화장을 하러 같이 갈 수 없었는데 연지는 날까지 이렇게 잘 잡아서 갔다고.

그래도 허전하고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당장이라도 안고 싶고 뽀뽀도 마구마구 싶다. 그렇다고 다른 강아지를 원치는 않는다. 아무리 귀여운 강아지라도, 설령 연지를 닮은 시츄를 데려다 놔도 연지는 아니니까. 내 방에 연지가 없으니까 거실에 가서 데려오면 될 것만 같은데 거실에 가도 연지가 없다. 화요일은 원래 엄마가 하루 종일 일이 있어서 내가 웬만하면 외출을 안 하고 집에 붙어있는 날인데, 오늘은 훌쩍 나가도 된다는 게 어색했다. 아까는 잠깐 우유를 사러 나가는데, 습관적으로 연지한테 우유 사러 다녀온다고 인사를 했다. 연지를 집에 혼자 두고 나갈 땐 단 5분을 나가더라도 꼭 갔다 온다고 보고를 했었으니까. 생각해보니 외출할 때 엄마 아빠가 어디 가냐고 물어보면 대충 얼버무리고 마는데 묻지도 않는 연지한텐 성실하기도 했네. 

무엇보다도 밤에 할 일이 없다. 내 취침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 큰 원인이 연지 수발 들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몰랐다. 밥을 준비하고, 먹이고, 약 먹이고, 대소변을 도와줄 때 실제 드는 시간도 적지 않지만, 특히 대소변은 연지가 원할 때에만 할 수 있는 거라 계속 동태를 파악해야 하니 컴퓨터 앞에 있어도 일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밤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되었다. 

가족끼리의 소통이 아주 약간 줄었다. 주로 거실이나 내 방에 있는 연지를 보러 서로가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사람들끼리도 한 마디씩 하고 그랬는데, 나부터 용건 없이 방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줄었다. 집안 분위기가 삭막 해진 건 아니지만 연지가 나머지 가족을 얼마나 촘촘하게 이어주고 있었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이 날을 기록하는 포스팅을 하나쯤은 남기고 싶었는데 위로의 댓글을 받고 싶지 않아 올리지 못했다. 내가 인스타그램에 쓰려던 말은 이렇다. 

"연지는 대치동 바닥이 좁아서 천하를 호령하러 떠났다." 

보는 사람 없는 여기에 연지 이야기를 이렇게나 많이 쓴 걸로 만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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