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OURNAL

안녕 드림위즈

드림위즈 메일이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버티다 이제야 종료하는 게 더 신기하다. 

 

드림위즈는 나의 첫 메일이었다. 1999년에 서비스를 개시했다고 하는데, 나는 2000년부터 확실히 드림위즈를 쓰기 시작해서 무려 2014년 말까지 업무용으로 활발하게 이용했었다. 그때 지메일로 넘어간 것도 내가 원했던 게 아니라 갑자기 접속이 안돼서 계속 버티다간 일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아쉬움을 무릅쓰고 갈아탄 거였다. 이만하면 원년 멤버에 충성 사용자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나?

 

오랜만에 접속해본 메일함 최근 페이지에는 각종 광고 메일이 쌓여있지만 페이지를 한참 넘기면 각종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썸남들과 주고받았던 이메일은 오글거리지만 귀엽다. 첫 해외여행 예약 확인 이메일이 있고, 여행 가서 한글이 쓰여있지도 않은 키보드로 언니한테 이메일을 보냈다가 받은 성의 없는 답장도 있다. 하나뿐인 동생이 생애 첫 해외여행을 혼자서 떠났는데 어쩜 그리 무정했는지? 그런가 하면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시작되게 해 준 이메일도 있다. 지금까지도 제일 많은 일을 같이 하고 있는, 사랑하는 나의 첫 클라이언트 회사에서 면접 보러 오라고 사무실 오는 길을 알려주는 이메일이다. 그 회사에 취직을 한 게 아니라 한 달 정도 출근하면서 그때 있었던 프로젝트 하나만 마치면 되는 거였는데 그 한 달이 어느새 10년째가 되었고, 그때의 직원들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데 나만 계속 함께 하고 있다. 외국에 살다 온 것도 아니고 영문과를 나오지도 않은 내가 어떻게 번역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꽤 많은데, 항상 이 클라이언트가 나를 뽑아줬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마음 속 뿌리 같은 회사다. 이메일들을 백업할 계획은 없지만 굳이 하나만 골라서 백업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 메일을 선택하겠다. 

 

이렇게 한 시대의 막이 내린다기보다, 이미 막을 내린 채 방치돼있던 극장이 제대로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는 기분이다. 내가 드림위즈 메일을 계속 썼던 큰 이유는 '꿈이 함께 있다'는 이름이 좋아서였다(그런데 그건 내 생각이었고 지금 검색해보니까 dream+wizard라고 한다). 드림위즈는 사라져도 나에게는 항상 꿈이 함께 하겠지. 

'JOURN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스트 아파트  (0) 2019.06.29
토이스토리 4 - 쓰레기는 쓰레기 통으로  (0) 2019.06.27
6월 이야기  (0) 2019.06.24
잔인한 5월  (0) 2019.06.07
ID 변천사  (0) 2019.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