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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토이스토리 4 - 쓰레기는 쓰레기 통으로

포키는 쓰레기가 되고 싶었고, 이미 쓰레기였다. 꿈이라고 부르기는 뭣해도 포키가 '해방'을 외치면서 몸을 던져 돌아가려 했던 곳은 쓰레기통이었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아이의 장난감이 되어야 한다는 강요 아래 그 탈출 시도는 번번이 물거품이 된다. 포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우디의 못다이룬 꿈에 대한 미련이었다.

아이의 친구가 되는 것은 장난감으로 태어난 우디의 꿈이고 기쁨이었다. 그런 그가 앤디 옆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장난감으로서의 매력을 잃은 뒤 다른 존재에게 그 꿈을 대리 실현해줄 것을 강요하는 모습까지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포키는 태생부터가 일회용 식기였다. 인간 아이들을 기쁘게 해줘야 할 어떤 책임도 의무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하물며 장난감으로 태어난 보핍도 새로운 삶을 개척해 인간 아이들을 등지고 살아가는데, 어째서 식기로 태어난 포키가 원치도 않았던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장난감으로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포키에게 장난감으로서의 삶을 강요하는 우디의 행동에 더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은, 이미 장난감으로서의 좌절과 한계를 누구보다도 씁쓸하게 맛봤으면서, 마치 꽃길만 펼쳐질 것처럼 포키를 장난감으로서의 삶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장난감을 아끼던 아이라도 어른이 되어 장난감 친구를 잊고 살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우디 자신도, 제시, 보핍 등 주변 친구들도 모두 이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았다. 장난감은 아이에게 선택받았을 때 친구가 될 수 있을 뿐 주체적으로 아이의 친구가 될 수도 없다. 그래서 매력이 떨어지고 나면 먼지 구덩이 같은 장난감 상자에 갇혀 아이와 함께 행복했던 고작 몇 년의 시간이나 회상하며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을 보내야 할지 가늠도 할 수 없다. 몸은 나날이 낡아가는데, 그렇다고 썩지는 않는다. 그런데 포키가 맞이하게 될 슬프고 뻔한 결말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우디는 장밋빛 미래만이 기다린다는 듯 장난감으로서의 삶으로 포키를 끌어들였다. 

만약 우디를 비롯한 장난감들이 쓰레기 통으로 돌아가겠다는 포키의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해줬다면, 그런데 막상 도착한 쓰레기장은 포키가 꿈꿨던 세계가 아니었고, 그 틈새로 보이는 바깥 세상이나 쓰레기통에 같이 들어온 잡지 쪼가리 속 어느 행복한 아이의 사진 같은 게 포키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그래서 결국 포키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갖은 고생 끝에 보니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장난감들이 그런 포키를 환영하며 보니와 다시 놀 수 있게 목욕재계를 도와줬다면(아마도 파티 사우르스 렉스가 등장해서) 장난감들의 진짜 우정이 빛나고 포키의 삶도 행복해 보였을 텐데. 그리고 상대에게 내 뜻을 강요하기보다, 각자가 가장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응원하고 도와주는 게 진짜 사랑이고 의리라는 멋진 교훈도 얻었을 텐데. 

보니의 품으로 돌아갔던 포키가 언제 다시 자유를 찾아 떠날지 모를 일이다. 그땐 앤디가 없으니 좀 더 수월하게 탈출할 수 있겠지.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좌절하고 행복해할 포키의 미래를 나라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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