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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여행 지금 나는 마닐라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이 글을 쓴다. 출장도 아니고 순수하게 놀러 왔건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또 한 번 노트북을 짊어지고 휴가길에 오른 것이다. 요즘은 자꾸 거절을 하다 보니 잦아들었지만, 나는 이 친구 저 친구에게서 같이 여행 가자는 제안을 일 년에 몇 번씩 받는 인기인이었다. 내가 연륜이 많아서 나랑 다니면 낯선 도시에서도 마음이 든든하다거나 타고난 모험심으로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소위 말하는 '돈 있는 백수'다. 물론 사실은 내가 피땀 흘려 버는 돈이니까 '백수'는 아니지만 일 년에 며칠이라고 못 박혀 있는 휴가를 윗사람 눈치 봐가면서 써야 하는 직장인이 아니라 내가 쉬고 싶으면 언제든 마음대로 쉴 수 있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직장에 다니는 두.. 더보기
임금협상: 나 얼마큼 사랑해? 연애가 건강하게 지속되려면 시간이 흐를 수록 관계가 전진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과 생활 속 지분을 점점 많이 내줘야 하는 것이다. 그 지분이 확장을 멈추고 정체하거나 축소되기 시작하면 연애는 파국을 맞이하기 쉽다. 사회생활은 연애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그 중에서 돈은 갑이 을에게 보여주는 가장 명징한 사랑의 표현이기에, 이 사랑의 무게를 협의하는 건 두 사람의 관계가 시험대에 오르는 아찔한 순간이다. "그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 며칠 전 한 클라이언트로부터 사랑을 추가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나의 첫 거래처이자 6년째 같이 일하고 있는 회사로, 번역료를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껏 받던 금액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내가 제안한 액수였는데 그 후로 새 거래처가 생길 때 더 높은 .. 더보기
그놈의 기획서 내 이름 석자가 '옮긴이'로 박힌 책을 서점에서 처음 마주했던 것은 번역을 시작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물론 '지은이'와는 차원이 다르겠지만 나는 일단 번역을 하고 있으니). 여러 종류의 번역 중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 대비 들어오는 돈은 가장 적지만 가장 배우는 것도 많고 끝내고 나면 뿌듯하고 남들 보기에 폼까지 나는 건 역시 출판 번역인 것 같다. 프리랜서로서 출판 번역을 시작하는 기본은 출판사에 기획서를 보내는 것이다. 해외에서 출간된 책 중 우리나라에 소개하면 좋을 것 같은 책을 골라서 관심을 가질 만한 국내 출판사에 제안하는 것이다. 기획서를 받은 출판사에서 그 책을 내기로 결정하면 내게 번역을 맡긴다. 그렇게 한 출판사와 서로 잘 맞으면 그 책 이후로 다른 책들을 함께 할 수도 있다. 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