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OURNAL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어릴 적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의 열혈팬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여자 주인공 예나를 굉장히 좋아했었다. 예나는 얼굴이 흰색이었다. 뽀얀 정도가 아니라 푸른끼마저 도는 흰색. 

반면 나는 꽤 가무잡잡했는데, 엄마랑 언니는 나와 달리 하얀 편이라 어린 마음에 나도 비슷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예나를 동경하며 예나처럼 하얀 얼굴이 되겠다는 의지로 하루에도 몇 번씩 열심히 세수를 했었다. 사실 나는 어릴 때 얼굴에 비누칠을 하는 게 무서워서 혼자 세수할 때면 물만 묻히고 나왔었는데, 두려움을 떨쳐내고 스스로 비누 세수를 할 수 있게 해 준 감사한 사람이 바로 예나였다. 

그렇게 열심히 세수를 했지만 당연하게도 흰색은 커녕 파운데이션 21호가 맞는 피부도 되지 못했다. 대신 대학교 때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예나 대신 나디아라는 별명을 얻었었는데, 겨우 피부색이랑 머리 길이로 닮았다고 하기에는 나디아가 너무 육감적이지 않나 싶다. 

어쨌든 세월이 흘러 드디어 2020년이 되었다. 어린 나의 간절함이 전해졌는지, 지금의 나는 놀랍게도 피부가 조금 하얘졌다(21호가 맞는 정도는 아니다). 그 비결은 비누세수라기 보다 주기적인 눈 떨림이 함께 하는 과도한 실내 생활, 올빼미 생활인 듯. 요즘은 일부러 태우는 사람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좀 애매한 톤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피부색에 연연하지 않은지는 한참 됐지만 2020년을 맞이해 인터넷에 원더키디가 많이 돌아다니니까 그때가 생각난다. 

 

+내가 얼마나 간절했냐하면 엄마가 토끼는 당근 먹고 하얀 거라고 해서 눈 질끈 감고 당근 먹은 적도 있었다. 이제 당근은 정중히 거절한다. 

'JOURN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 믿고 사주시잖아요  (0) 2020.01.31
노래를 불러요, 작가여  (0) 2020.01.19
나 쓰레기  (0) 2019.11.12
전전긍긍  (0) 2019.09.30
링링의 센스  (0) 2019.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