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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피 냄새

연지의 종양에 딱지가 앉았다. 피부가 괴사되는 거라고 한다. 그 딱지 밑으로 종양이 썩어들어가기 때문에 고름을 빼고 드레싱을 해줘야 한다고 한다. 네이버 카페에 어떤 친절한 분이 적어주신 자세한 설명을 따라 멸균 거어즈와 습윤 밴드, 멸균식염수를 샀다. 습윤 밴드는 나도 얼굴에 뾰루지가 났을 때 붙이는거라 익숙하다. 내 얼굴에 붙일 땐 보통 자기 전에 붙였다가 아침에 일어나 허옇게 퉁퉁 불은 밴드를 떼어내는데, 연지한테 붙인 건 잘 한건가 불안해서 몇 시간을 못 기다리고 새로 갈아줬다. 처음 갈아줄 때 딱지 한 덩이가 떨어지고, 두 번째로 갈아줄 때 또 크게 한 덩이가 떨어졌다. 피가 맺힌 종양에 식염수를 부어가며 거즈로 피를 닦아줬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에 닿았다. 나는 비염이 있어서 후각이 약한 편이다. 가끔은 코가 마비된 것처럼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내 코에도 훅 들어오는 냄새라면, 아무리 늙었어도 명색이 개인 연지는 훨씬 진하게 맡고 있겠지. 좋은 냄새만 맡고 살기도 바쁜 삶인데 이런 냄새나 맡게 해서 미안하다. 

딱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피부 상태가 어떤지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바둥거리는 연지를 간신히 붙잡고 새 밴드를 붙이고, 주변에 엉성하게 종이 테이프를 둘러줬다. 조금이라도 잘 붙여보려고 테이프를 누르니까, 종양이 손에 꽉 차게 잡혔다. 내 손이 더 작았더라면 종양도 그만큼 작은 크기로 잡혔을 것만 같다는 기분에 쓸데없이 큰 내 손을 괜히 원망해본다. 

종양이 이만큼 자라서 터지는 건 연지에게 처음 있는 일이고, 나도 어쩌다 생긴 긁혀서 생긴 상처에 연고나 발라봤지, 소독이니 드레싱이니 하는 건 난생 처음이다. 잘 하는게 맞는지 무섭고 불안하지만 같이 받아들여 가야 할 일이다. 

카페에 종양 관리에 대해 알려주신 분의 글을 보면 종양 터지는 건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라고 한다. 앞으로 더 아플 일이 많이 남아있으니. 하긴 나도 연지 어릴 땐 백내장이 개 인생에서 제일 무서운 건 줄 알았는데 이제와서 보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금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피를 닦아주는 것도 나중에 보면 다 행복한 추억으로 남겠지. 

피를 흘리면서 빈혈이 생길 수 있다고 해서 오늘은 철분 보충을 위해 돼지 간을 줬다. 내일은 달걀과 감자를 먹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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