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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피, 땀, 픽셀 / Blood, Sweat, and Pixels



제목: 피, 땀, 픽셀 | 트리플 A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원제: Blood, Sweat, and Pixels: The Triumphant, Turbulent Stories Behind How Video Games

지은이: 제이슨 슈라이어 

옮긴이: 권혜정 

출판사: 한빛미디어 | 2018년 8월 3일 



::옮긴이의 말:: 


게임처럼 풀리지 않는 게임 이야기


게임을 하다 보면 내 인생도 이렇게 풀렸으면 싶을 때가 있다. 돈이 없어? 자원만 부지런히 수거해도 기본 소득은 나온다. 그걸로 부족하면 캐릭터들에게 열심히 일을 시킨다. 그러다 보면 돈도 벌리고, 레벨도 올라간다. 건강? 격하게 싸우다가 크게 다쳐도 조금만 기다리면 오뚝이처럼 일어난다. 그러니까 플레이어에게 게임은 기본적으로 노력하면 된다는 공식이 통하는 세계다. 게임의 세계는 그런데, 게임 개발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사무실에 앉아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건만 때 되면 자원이 솟아오르는 샘물 같은 건 없다. 직원들은 NPC처럼 고분고분 일을 하지도, 약속된 결과물을 마법처럼 선사하지도 않는다. 피로는 누적된다. 심지어 리셋 버튼은 남의 손에 있다. 때로는 내 의지와 관계 없이 그 버튼이 눌려서 지금껏 올라간 레벨이 몽땅 초기화되기도 한다. 그 어떤 고난이도 게임보다 더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며 많은 플레이어들을 위해 환상의 게임 세계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이 책은 들려준다. 


사실 역자인 나도 이 책을 한창 번역하던 올 봄, 게임 생각을 너무 하고 다녔는지 새로운 게임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냈다. 요즘 즐겨 타는 서울시 공용 자전거 따릉이를 소재로 한 타이쿤 게임인데 번역을 하면서 고된 게임 개발 과정을 원 없이 간접 체험한 나는 게임 기획이라는 새로운 꿈을 1초 만에 접어버렸다(혹시라도 이 아이디어에 관심 있으신 분은 연락 바랍니다). 하지만 진지한 열정을 품고 게임 개발의 길을 가고 있거나 꿈꾸고 있는 진짜 게임 개발자들에게는 게임 업계의 화려한 결과물의 이면을 보여주는 이 책이 오히려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는 위로와 동지애를 전하지 않을까 한다. 


책을 다 읽고 뒷이야기가 궁금할 독자 분들을 위해 등장인물과 게임들의 근황을 조금이나마 소개하자면, 우선 옵티시안은 2018년 5월에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2: 데드파이어>를 내놓았다. 이번에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개발 자금을 모았는데, 240만 달러 이상 모금 시 한글화를 추가 목표로 내걸어서 우리 나라에서 화제를 모았다. 에릭 바론은 2018년 8월에 드디어 <스타듀밸리>에 멀티플레이어 모드를 정식 업데이트했다. 그가 이 책에서 멀티플레이어 모드를 완성하지 못해 괴로워했던 것을 생각하면 참 반가운 소식이다. 바이오웨어는 아직 <드래곤 에이지 4> 소식을 들려주지 않는 대신 새로운 야심작 <앤섬>을 2019년 2월에 한국어 버전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그리고 2018년 봄, <드래곤 에이지 : 인퀴지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마이크 레이드로가 14년 만에 스튜디오를 떠났다. 그는 2018년 게임 개발자 회의에 참석해 <드래곤 에이지 4>에 대한 믿음과 함께 CD 프로젝트 레드가 개발 중인 <사이버펑크 2077>에 참여하고 싶다는 관심을 내보였다. 이 말은 즉, <더 위쳐 3>을 개발한 CD 프로젝트 레드가 신작을 준비 중이라는 뜻이다. 1988년에 나왔던 종이 RPG <사이버펑크 2013>, 1990년에 나온 RPG <사이버펑크 2020>을 원작을 57년 뒤인 2077년 버전으로 새롭게 풀어내는 것이다. 요트클럽은 <셔블 나이트>의 2018년 하반기에 마지막 확장팩 <킹 오브 카드>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번지 스튜디오는 <데스티니 2>라는 제목의 후속작을 선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데스티니 가디언즈>라는 제목의 한국어 버전으로 출시될 예정인데, 배급사는 다름아닌 블리자드다. 블리자드가 배틀넷을 통해 자사가 개발하지 않은 게임을 처음 출시하면서 배급이라는 새 영역에 발을 들인 것이다. 이 책에서 번지 스튜디오가 <데스티니> 개발로 힘든 시간을 겪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블리자드이기에 의미가 남달라 보인다. 


마지막으로 책 속 등장인물들과 다름없는 열정으로, 오늘 밤에도 피와 땀으로 픽셀을 뭉쳐 게임을 빚고 있을 한국의 모든 게임 개발자에게 이 책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