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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내부 고발자들, 위험한 폭로 / This Machine Kills Secrets



제목: 내부 고발자들, 위험한 폭로 : 위키리크스와 사이퍼펑크, 해킹과 암호화 기술로 세상의 정보를 가로챈 이들 
원제: This Machine Kills Secrets: How WikiLeakers, Cypherpunks, and Hacktivists Aim to Free the World's Information 
지은이: 앤디 그린버그 
옮긴이: 권혜정 
출판사: 에이콘출판사 | 2015년 7월 



::옮긴이의 말::
2015년 대한민국의 여름은 국가정보원의 해킹툴 사용 의혹으로 얼룩졌다. 국가정보원이 접촉한 이탈리아 보안업체 해킹팀이 도리어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커에게 해킹을 당하면서 세계 각국 정부들이 감추고 싶어했던 방대한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누가 왜 어떤 방법으로 해킹을 자행했는지는 베일에 감춰져 있지만 그로 인한 파장은 온 세상에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

한편, 최근 몇 년간 잠잠했던 위키리크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 2015년 6월 어느 날,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문건 6만 건과 미 국가안보국이 프랑스 대통령들을 감청해왔다는 내용의 기밀문건을 연이어 폭로한 것이다. 2006년 설립된 이래 전통 언론 매체에서는 감히 다룰 수 없었던 세계 각국 정부의 일급기밀들을 과감하게 방출해온 위키리크스는 2010년 여름, 미국의 아프간 전 관련 기밀 문건과 국무부의 외교문건을 공개하면서 21세기 폭로 저널리즘의 새 장을 열었다.

위키리크스는 대중 앞에 혜성처럼 등장한 정체불명의 웹사이트였다. 줄리안 어산지라는 이름의 백발 호주인이 설립했다는 사실 외에는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듣도 보도 못한’ 조직이 국가적 기밀정보들을 신명나게 터뜨리다니, 과연 그 전까지 볼 수 없던 낯선 풍경이었다. 하지만 줄리안 어산지는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위키리크스를 존재하게 한 통신 기술 발전과 폭로 저널리즘의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미국 랜드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군사전문가 대니얼 엘스버그는 국방성의 베트남전 관련 1급 기밀문건 250만 건을 유출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제공했다. 백악관을 뒤흔들고 미국의 패전을 이끈 ‘펜타곤 문서’ 사건이었다. 폭로 저널리즘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이 사건은 당시 자라나던 어린 세대에게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한편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컴퓨터 네트워크 상의 공개열쇠 암호화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전까지 국가 간 전쟁에서나 사용되던 암호화 기술을 민간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된 획기적 발전이자, 현대 암호화 기술의 시작이었다.

이런 시대의 변화 속에서 암호화라는 새로운 기술에 폭로 저널리즘이라는 정신을 담아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꿈을 품은 컴퓨터 학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1992년에 에릭 휴즈와 팀 메이, 존 길모어가 결성한 해커 집단 ‘사이퍼펑크(cypherpunk)’다. 이들은 동료 해커들과 온라인에서 암호화 기술에 대한 정보와 생각을 나눴고, 지구 반대편 호주 멜버른에는 사이퍼펑크의 메일링 리스트를 기웃거리며 해커의 꿈을 키우던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은 21세기에 위키리크스라는 전대미문의 웹사이트를 만들어 초강대국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정부의 부패한 민낯을 세상에 까발린다. 이 책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폭로의 역사를 이끌어온 산증인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자취를 돌이켜본다.

물론 내부고발, 폭로의 주역들도 완벽하지만은 않았다. 사소한 갈등으로 동료를 미워하거나 등을 돌리고, 완벽한 기술을 선보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가 허술하기 그지없는 결과로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영화에 나올 법한 고독한 천재 해커, 정의의 사도와는 영 다른 모습이었다. 무분별한 폭로의 정당성과 제3의 피해 유발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하지만 신변 위협에도 아랑곳 않고 세계 이곳저곳의 어두운 비밀을 고발한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아름답지만은 않은 세상의 이면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위키리크스는 재기를 위한 기지개를 켰으며, 혹여나 이들이 다시 겨울잠에 들더라도 새로운 꿈을 꾸는 다음 세대의 누군가가 또 등장해서 『내부 고발자들, 위험한 폭로』의 후반전을 위한 새 이야기를 쓰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