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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쟁이 연지가 밥을 안 먹었다. 식욕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조바심에 비장의 습식사료를 데웠다. 여간해서는 입을 안 열고 혀만 깔짝거리길래, 핥기라도 해 달라는 마음으로 된장 같은 질감의 습식사료를 손으로 집어 입 앞에 갖다 바쳤다. 손은 말할 것도 없고 입고 있던 바지까지 버려가며 드셔 달라고 읍소하는 내 모습이 웃겼다. 엄마한테 말했다. "나 아무래도 전생에 연지한테 크게 빚이라도 졌었나봐." 그랬더니 엄마는 말했다. "난 너한테 빚졌었나봐. 그래서 몇 년을 배 위에 올려놓고 자고." 나는 어릴 때 천식을 가볍지 않게 앓느라 밤에 수시로 기침을 해서, 엄마가 언제든 바로 알아차리고 보살펴주려고 나를 꽤 커서까지 배에 올려놓고 잤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억은 안 나는데 그랬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엄마 나.. 더보기
고름 냄새 지난번에 종양이 터졌던 자리가 딱지로 덮여서 아무는가 했는데, 다시 터지면서 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그전에 터진 자리에서 맑은 물이 줄줄 흐르면서 혹이 쪼그라든 적이 있었다. 며칠 뒤 다시 부풀어 올랐지만 또 물이 나오고 쪼그라들었는데, 나도 어릴 때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등에 호스를 꽂고 딱 그런 주황색 맑은 물을 잔뜩 빼낸 적이 있던 터라 강아지에게도 좋은걸 거라고 안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맑은 물 대신 찐득한 고름이 나왔다. 좋지 않은 냄새도 났다. 늘 그랬듯,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단계 하나에 또 진입한 것 같다. 고름에서 나는 냄새는 꼬릿꼬릿하다고 할까? 엄마가 집에서 청국장을 담글 때 거실에 진동하던 그 냄새랑 확실하진 않지만 비슷했던 것 같다. 그땐 엄마한테 이 냄새가 마음에.. 더보기
피 냄새 연지의 종양에 딱지가 앉았다. 피부가 괴사되는 거라고 한다. 그 딱지 밑으로 종양이 썩어들어가기 때문에 고름을 빼고 드레싱을 해줘야 한다고 한다. 네이버 카페에 어떤 친절한 분이 적어주신 자세한 설명을 따라 멸균 거어즈와 습윤 밴드, 멸균식염수를 샀다. 습윤 밴드는 나도 얼굴에 뾰루지가 났을 때 붙이는거라 익숙하다. 내 얼굴에 붙일 땐 보통 자기 전에 붙였다가 아침에 일어나 허옇게 퉁퉁 불은 밴드를 떼어내는데, 연지한테 붙인 건 잘 한건가 불안해서 몇 시간을 못 기다리고 새로 갈아줬다. 처음 갈아줄 때 딱지 한 덩이가 떨어지고, 두 번째로 갈아줄 때 또 크게 한 덩이가 떨어졌다. 피가 맺힌 종양에 식염수를 부어가며 거즈로 피를 닦아줬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에 닿았다. 나는 비염이 있어서 후각이 약한 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