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시치미 가방 제작기 - 샘플 완성

공장에 의뢰한 샘플이 완성됐다. 비가 추적추적 오던 날, 샘플을 받으러 신설동으로 향했다. 

받아본 소감. 우리 시치미 용 됐다. 뭐랄까, 다이어트, 치아교정, 피부 마사지 등등 할 수 있는 건 성형 빼고 다 해서 외모 업그레이드한 사람 같다. 디자인은 가샘플이랑 똑같아도 비싼 가죽 쓰니까 피부가 화장한 것처럼 해사하고, 울퉁불퉁하던 바느질이 단단하고 가지런해지니까 얼굴형이 매끈해졌다. 스트랩이랑 입구 지퍼도 달았더니 진짜 어엿한 가방이 됐다. 

디자인은 이미 완성형인 줄 알았는데, 샘플 나온 걸 보니까 시치미의 새로운 표정과 가능성이 눈에 들어온다. 시치미는 눈이랑 입이 있어서인지 가방 같지 않고 새 친구 같다. 요즘 내 단짝 친구. 

하루는 시치미를 들고 강남역에 크라우드 펀딩 설명회를 들으러 갔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거다. 나야 비맞으면서 자전거까지도 곧잘 타지만 시치미가 젖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엄마한테 전화해서 정류장으로 우산을 가지고 와달라고 했다. 사실 버스에서 내렸을 땐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정도였는데도 시치미가 한 방울이라도 맞을까 봐 끝까지 우산을 쓰고 왔다. 옛날에 명품 가방 짝퉁 판별하는 방법이라며, 비 오고 우산 없을 때 몸으로 가방을 보호하면 진품이고 가방으로 머리를 보호하면 짝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났다. 그렇게 따지니 나한테 시치미는 버킨도 피카부도 안 부러운 명품백이 맞다. 

이렇게 소중하지만 직접 들고 다녀보니까 여기저기 보완할 점도 보인다. 우선 스트랩 위치가 틀렸다. 스트랩은 정말 아무데나 달아도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이 위치 때문에 디자인 컨셉 자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줄이야. 손잡이 자석도 더 센 걸로 바꿔야 한다. 자석 세기도 여러 단계를 시험해봤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 못했다. 무엇보다도 정말 골머리를 앓아가며 고안했던 손잡이 다는 방식이 영 허술하다. 나야 내가 만든 가방이니까 들고 다니지, 돈 주고 산 제품이 이랬으면 환불 감이다. 스트랩이나 자석은 바꾸기만 하면 되는데 손잡이 다는 방식은 아무래도 다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봐야겠다. 

사실 샘플이 나오기도 전에 시치미 전개 방향에 큰 변화가 생겼다.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언니한테 보여줘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받아온 덕분이다. 마케팅이랑 판매 방식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며, 진짜 내꺼 하나 만들 생각이 아닌 이상 혼자 재미있게 만들면 그만이라는 마음가짐도 바꿔야 한다고. 현실적인 가격대를 생각해서 소재랑 사이즈도 다시 고민해보기로 했다. 비록 언니의 팩트 폭격에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지만 이런 얘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어찌나 감사한지. 언니가 하는 카페에 영문 메뉴 필요하다길래 그 번역이라도 내가 해주려고 얼른 물어왔다. 은혜에 보답하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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