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시치미 - 시장 조사

시치미 노트북 가방과 비슷한 가방을 발견해서 얼마 전 주문해봤다.

가방 형태와 크기, 소가죽 소재, 10만원이 안 되는 가격, 크라우드 펀딩까지 여러 모로 내가 목표하는 시치미의 조건에 부합하기 때문에 어떤 만듦새가 나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설명 페이지만 봤을 땐 시치미가 '시치미'인 것만 빼면 디자인한 형태나 의도나 꽤 비슷했다. '이런 가방이 꼭 필요한데 시중에서 찾아볼 수 없어서 직접 만들었다'는 등의 말을 하기 멋쩍어질 것 같아서 정말 비슷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고, 원래 전문으로 가방을 만드는 사람이 같은 나랑 비슷한 의도를 담아서 만들었으니 참고할 만한 좋은 예를 보고 싶기도 했다. 사실 크라우드 펀딩이라 주문은 한참 전에 해놓고, 요즘 거의 손을 떼고 있어서 이 가방도 잊고 있었는데 최근 도착했다. 

우선 실물을 보니 가방의 기능 면에서 생각처럼 시치미랑 비슷하지는 않았다.
크기도, 내부 구조도 아주 약간 다르고, 막상 보니 기능적인 면의 디자인 의도가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것도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현재의 시치미 상태가 더 마음에 들지만(그야 완전히 내 생각만으로 만들었으니까) 샘플을 여러 가지로 만들 수 있었다면 시도해보고 싶었던 요소, '그게 더 괜찮았으면 어쩌지'하고 미련이 남을 수 있었던 요소를 오히려 샘플 비보다 저렴하게 시험해본 셈이 돼서 잘 사본 것 같다. 이 가방도 외출할 때 들고 다녀보면서 몸소 더 겪어봐야겠다. 

사실 시치미는 요즘 일시정지 상태다. 본업이 너무너무 바쁘기도 하고, 요즘 패션계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도 해서. 시치미는 어차피 마스크도 못 쓰는 아이니까 코로나가 물러갈 때까지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내가 빨리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내심 아쉬웠던 부분을 채워가고 있으려고 한다. 

우선은 가죽 공방을 다니면서 직접 만드는 방법을 배울 생각이다. 마침 옆동네에 브랜드 준비반이 있는 가죽 공방이 있다! 내가 본업에서 '을'이 되어 일하다 보면 클라이언트가 번역을 해봤는지, 나말고 다른 번역가들과도 일해봤는지에 따라 결과물에 의견을 주고받는 깊이가 다르다. 물론 번역을 직접 해봤으면서 서로 존중해주는 경우에 일하는 게 제일 즐겁고 결과물도 좋다. 그래서 나도 나중에 공장에 의뢰할 때 뭘 좀 아는 갑이 되고 싶다. 핸드백 샘플을 제작할 땐 내가 등 어깨 굽어가며 바느질해서 가 샘플을 만들어봤기에 이 디자인을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는 이해했지만 손바느질한 모형 말고 실제 가방 제작에 대한 이해는 없어서 아쉬움이 있었고, 노트북 가방은 가 샘플 제작을 안 해봤더니(너무 힘들었다..) 뭐랄까 내가 치수 정해서 만든 샘플이라도 그 디자인과 치수 하나하나를 꽉 잡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손으로 만지며 하나하나 해보려고 한다. 시치미 가죽 보러 다니면서 샘플로 샀던 가죽 원단도 좀 있으니 어떻게든 써보려고 한다. 아직 생각만 해놓은 새 아이템도 있어서 그것도 만들어봐야지. 

그리고 소재 공부를 더 하고 싶다. 가방의 완성도만 생각하면 동물 가죽이나 합피나 마음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라서 다른 친환경 가죽을 천천히 알아보려고 한다. 여러 모로 가장 좋은건 국산 한지 가죽일 테고 파인애플, 선인장, 버섯 등 몇 가지 선택지가 있는 것 같다. 원래 코엑스에서 의류 소재 박람회 같은 게 열리던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하기는 할지, 가면 가방 소재도 볼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걸 생산한다는 자체로 이미 '친환경'이라는 말을 할 순 없지만 최대한 덜 나쁜 방법이 뭐가 있을지는 열심히 찾아보려고 한다.